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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5.03 여주인공과의 인터뷰: 어반 판타지

여주인공과의 인터뷰



어반 판타지의 재탄생


어반 판타지가 물밀듯이 나온 지 좀 됐다. 초자연적인 존재들은 숲이나 성에 숨는 대신 도시의 밤거리를 돌아다닌다. 뱀파이어, 늑대인간, 요정 등 고풍스러운 종족들에게는 현대적인 요소가 덧붙었다. 뱀파이어는 망토를 두르고 처녀를 사냥하는 대신 편의점에서 인공 혈액을 산다. 도시에 사람들이 모여들수록 익명성은 강조되었고, 그들은 신비로움을 잃어버리는 대신 보다 사회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들의 존재는 전설이되 도시 전설이다. 어반 판타지의 인간들은 더 이상 경외감을 품지 않는다. 인간형의 초자연적 존재들을 포함할 수 있을 정도로 인간 사회는 충분히 거대해졌다.

 


 

 앤 라이스가 쓴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시리즈는 뱀파이어가 도시에 녹아드는 데 한 몫 했다. 그 안에 등장하는 뱀파이어들은 현대의 문물인 쇼핑, 락 음악, 파티를 즐긴다. 불로불사에 강력하고 아름다운 뱀파이어들은 손쉽게 인간을 유혹하고, 서로 간에 애증이 얽힌 싸움을 벌인다. 비인간적이지만 감정적이며, 미지의 괴물이 아니라 유사인간처럼 묘사된다. 이해할 수 있고 교감할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따라서, 연애도 가능하다.

 

 이 때만 해도 뱀파이어는 매력적이긴 해도 인간의 연인은 아니었지만,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뱀파이어는 순정만화의 완벽한 남주인공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햇빛을 받으면 대리석마냥 반짝반짝 빛나는 기능까지 있다. 낮에도 돌아다닐 수 있는, 이질성이 사라지고 장점만 남은 뱀파이어는 더 이상 시체가 아니라 매력적인 연애 대상으로 다뤄진다. 대체 어떤 시체가 사랑과 성욕을 느낀단 말인가. 최근에 나온 『웜 바디스』는 무려 좀비가 주인공이다.


 

 


 매력적인 이종족들과의 연애를 구성하기 위해 작가들은 여러 장치를 고안했다. 뱀파이어는 더 이상 사람을 죽여 피를 빨지 않고 늑대인간은 보름이라고 미치지 않는다. 학교도 다니고 멀쩡한 직업도 있다. 아직 투표하는 초자연적 존재는 못 봤지만, 작품에 따라 시민권 운동도 한다. 무엇보다 개성적인 여주인공들이 나타났다. 초자연적 존재들과 어울리려면 여주인공도 그 계기가 될 특이함이 있어야 하기 때문인 모양이다. 사이 좋게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경우를 제외하면, 드넓은 도시 어디 가서 그런 존재들과 맞짱, 아니 연애를 하겠는가. 강력한 존재 앞에 주눅들지 않고 줄다리기도 하고 사랑싸움도 하려면 여주인공도 뭔가 하나쯤 있어야 한다. 우유부단 어장관리의 극치를 보여주는 『트와일라잇』 여주인공도 최소한 '피가 맛있다'는 특징은 갖고 시작한다.

 

 그런 점에서, 로맨스 성격이 강한 어반 판타지 여주인공들을 모아 비교해보고자 한다. 더 명확한 비교를 위해 각 캐릭터의 스테이터스를 별 5개로 매겼다. 물론 기준은 매우 주관적이고 임의적이다. 이와 더불어 각 작품들이 초자연적인 존재들을 어떻게 현대 사회에 끌어들이는지 비교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1. 트루 블러드
                             

이름

수키 스택하우스

직업

동네 술집 웨이트리스

나이

20

외모특징

젊고 빵빵한 금발녀

특수능력

텔레파시: 마음 읽기

섹시 어필

 

체력 ★★★
근력 ★★☆
외모 ★★★★★
지력 ★★
마항력 ★☆
근성 ★★★☆
독립심 ★★★★★
눈치 ★★☆
로맨스 ★★★★★

 


[어두워지면 일어나라] 외 10권 

 

    



 수키는 금발에 빵빵한 미녀 웨이트리스다. 가끔 이런 표현도 나온다. "하느님은 내 가슴에 과한 축복을 주셔서 속옷을 입지 않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전부 쳐다본다." 그녀의 피가 맛있어 보인다는 게 설득력 있지 않은가? 이 동네 뱀파이어들은 밥은 먹지 않아도 밤일은 가능하다. 수키 스택하우스 시리즈를 드라마화한 <트루 블러드>는 섹시한 여배우 안나 파퀸이 여주인공으로 등장하며, 미성년자 관람불가 등급이다.

 

 수키의 다른 별명은 미치광이 수키였다. 그녀는 타고난 텔레파시 능력자로, 가만히 있어도 다른 사람의 생각이 흘러 들어온다. 어린 시절의 그녀에게는 전혀 유쾌하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 사춘기 시절의 연애 경험은 참 황폐했다고 한다. 대화 중인 상대방이 말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오른쪽 옆구리가 간지럽네' 라든가 '쟨 가슴 하나는 진짜 끝내준단 말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면(그것도 생각하는 본인은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잡다한 생각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흘러 들어온다면), 대체 누구와 연애를 할 수 있겠는가. 특히 같이 잘 경우, 상대방이 '내가 잘 하고 있나?' 등등의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끊임없이 들어야 한다면. 그녀는 사람들의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 않는 것, 방어벽을 치는 것, 귀 기울이지 않는 법을 배워야 했다.

 

 다만 죽은 자의 생각은 읽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뱀파이어 빌은 수키에게 처음 만나는 시원하고 상쾌한 침묵이었고, 첫 눈에 반할 만한 사람이었다. 시리즈 첫 권인 [어두워지면 일어나라]는 빌이 수키가 일하는 동네 술집에 손님으로 등장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수키는 처음으로 생각의 잡음에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되는, 안심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 것이다. 첫눈에 끌린 게 당연하다. 물론 빌은 잘 생기고, 점잖고, 목소리도 좋고, 나이가 많은 만큼 여자에게도 능숙하기도 하다. 그리고 뱀파이어가 피를 빨 때는 매우 황홀하다고 하니.

 

 '트루 블러드'라는 합성 혈액이 발명된 이후 뱀파이어들은 인간 사회로 나올 수 있게 되었다. 동네 바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합성 혈액 한 잔 주세요, RH+ A형으로." 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전히 그들은 혐오, 경멸, 공포의 대상이다. '교양 있음'을 자처하는 이들은 뱀파이어를 좋게 보지 않는다. 뱀파이어를 흉내 내는 추종자들이나 뱀파이어에게 자진하여 피를 제공하는 인간에게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들은 매우 많다. 하지만 불로불사에 가까운 생명과 힘을 지닌 그들은 동경, 신비, 매혹의 대상이기도 하다. 뱀파이어 피는 정제하여 마약으로 팔리고, 도시에는 진짜 뱀파이어가 나타난다는 점을 광고로 내세우는 클럽들이 있다.

 

 수키는 누구의 소유물도 될 생각이 없지만, 뱀파이어나 인간 사회에서 보여지는 수키의 위치는 연인이 아니라 뱀파이어의 먹이나 하인이다. 목에 이빨 자국이 있는 여자는 팔에 주사 자국이 있는 것과 비슷한 시선을 받는다. 그녀는 이를 충분히 알고 있지만 인정할 생각은 없다. 스택하우스 가문은 가난하고 내세울 것 없는 집안이지만 자존심은 있다. 어릴 때부터 남의 생각을 읽으며 발생하는 갈등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던 수키는 독립심이 투철하다. 남자친구 빌이 남북전쟁 시대 인물답게 여자에게 구식으로 굴면(여자는 집에 있어야 한다는 식의), 같이 탄 차에서 주저 없이 내릴 정도다.

 

 정석대로라면 처음에 등장하는 빌이 진 히어로(혹은 공식 남주인공)겠지만, 그 자리는 꽤나 위태위태하다. 수키가 사는 루이지애나 동네의 지역구 짱은 에릭이라는 뱀파이어로, 수키의 능력을 알고 나서는 사건 의뢰를 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수시로 끈적하게 유혹해대는데, 이게 꽤 괜찮다. 예를 들면 에릭은 키스를 끝내주게 잘 하는데, 오래 산 만큼 연습할 시간도 많았다. 무엇보다 생각이 안 들리는 상대가 필요한 거라면, 수키에게 뱀파이어는 모두 연애 가능한 대상이다. 순정만화 같은 할렘을 형성하기엔 수키가 너무 고집 세고 자존심 강하지만 말이다. 나중 가면 빌이든 에릭이든, 귀찮게 달라붙는 남자들을 전부 시원하게 걷어차버리는 모습도 보여준다.

 

 잡지 <판타스틱> Vol.17 (2008/9)에는 수키 시리즈 단편 <스트리퍼 요정 살해사건>이 실린 적이 있다. 모처럼 수키가 활약하는 내용으로, 수키의 능력을 이용하여 요정을 살해한 범인을 찾는다. 다른 시리즈를 읽어보지 않았어도 즐길 수 있다.

 

 

 

2. 뱀파이어 헌터 애니타 블레이크
                             

이름

애니타 블레이크

직업

좀비 소환사 / 뱀파이어 처형관

나이

24

외모특징

검은 머리 하얀 피부 작은 체구

특수능력

좀비 소환

쎈 척

 

체력 ★★★★☆
근력 ★★★★
외모 ★★★
지력 ★★★
마항력 ★★★☆
근성 ★★★★★
독립심 ★★★★★
눈치 ★★★
로맨스 ★★★☆

 


[달콤한 죄악], [웃는 시체], [저주받은 자들의 서커스]

 

  

 


 애니타의 별명은 처형관이다. 그녀는 뱀파이어를 증오하고, 그들을 꿰뚫어 보고, 총으로 머리를 날려버린다. 뱀파이어들이 인간으로(어쨌거나 권리를 가진 생명체로) 인정받게 된 이후로는 뱀파이어 사냥에도 영장이 필요해졌지만 말이다. 적극적으로 뱀파이어를 증오하는 인물인지라 달콤한 로맨스를 연출하긴 힘들지만, 강력한 뱀파이어와의 밀고 당기기를 끌어가기에는 매우 적절하다. 뱀파이어가 매력적으로 유혹하더라도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고집을 부리며 거절하기 때문이다. 애니타가 거주하는 도시 세인트루이즈에는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강력한 뱀파이어들이 몇 자리잡고 있고, 그 중에서도 나이께나 먹은 뱀파이어 장클로드가 바로 끈덕지게 애니타를 필요로 하는 인물이다. 애니타는 위기상황에는 이 교활한 뱀파이어게 어쩔 수 없이 한 수 빼앗기지만, 뱀파이어 헌터로서 능력을 발휘할 때는 한 방 먹이곤 한다.

 

 그녀는 뱀파이어는 썰어버리지만 좀비 인권에는 관심이 많다. 공식 직업은 좀비를 부리는 소환사다. 전문직이지만 자영업자는 아니다. 엄연히 회사에 소속되어 있고, 그녀를 귀찮게 부려먹는 회사 사장이 있다. 사장은 좀비에 관해서는 아는 것 하나 없지만 돈 버는 일에 대해서는 매우 밝은 인물로, 애니타가 하루에 좀비를 셋이 아니라 다섯 이상 소환할 수 있다는 걸 알면 당장에 예약 건수를 늘릴 것이다(따라서 이는 비밀이다).

 

 이 사회에서 좀비 소환은 공인된 직업이다. 부두교의 마술 같은 사악한 일과는 다르다(애니타는 /기독교도다). 대신에 보다 사회적으로 유용한 일을 한다. 유언장을 남기지 않고 죽은 부호를 불러내고 유족들에게 수수료를 받는다. 살인사건 피해자를 되살려 증언을 듣는다. 좀비의 증언은 결정적인 증거는 아니지만 참고자료로는 인정된다. 혹은 수상하게 살해된 시체를 검시하고 적절한 처리를 하기도 한다. 좀비나 뱀파이어에게 살해된 시체는 되살아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지역 경찰 초자연생명체 전담 부서 자문위원으로 일하기로 수락한 후로는 그런 일에 종종 불려나가고 있다. 어이, 애니타. 사건이야. 이번 시체는 더 끝내줘. 참고로 내장이 썰린 시체에서는 피 냄새와 함께 화장실 냄새가 난다고 한다. 소화되다 만 내용물이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주먹질 한번 못하는 나약한 여자애들과 비교하면 참 터프한 아가씨다. 옷 입을 때마다 총을 어디 휴대할지를 생각하고, 매주 근육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다만 아무리 힘을 키워봤자 키 160cm도 안 되는 날씬한 아가씨에 불과하고, 초자연적인 생명체들 + 그들의 수족인 우락부락한 청년들과 만나면 피할 생각부터 하지만 말이다. 체급 차이는 인정하고 싸우는 게 현명한 일이지만, 그녀와 같은 체급의 적은 뱀파이어 외에는 없다는 게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훌륭한 전적을 자랑하는 뱀파이어 헌터다.

 

 시리즈 첫째 권인 [달콤한 죄악]은 쭉쭉 읽히는 스릴러지만 억지스러운 면이 느껴진다. 1인칭으로 표현되는 애니타의 내면은 터프함에 대한 자기 세뇌로 가득하다. 그녀는 핸드백에 총을 넣으면 필요할 때 재빨리 뽑을 수 없다는 이유로 총집을 고집한다. 유능한 헌터라면 마땅히 순식간에 총을 뽑아 들어야 하고, 그녀는 유능한 헌터이기 때문이다. 이런 묘사는 하드보일드 느와르 액션이나 홍콩 영화에는 무리없이 녹아든다. 하지만 주인공이 검은 머리 검은 눈 하얀 피부의 도자기 인형 같은 아가씨가 되면 약간 어색해진다. 우락부락한 새 똘마니들과 만날 때마다 힘으로는 붙을 수 없다고 반복하고, 그들에게 얕잡아 보인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터프한 헌터라는 묘사는 등장하는 적들이 보통 인간은 절대로 맞붙을 수 없는 존재들이라는 묘사와는 전면적으로 충돌한다. 인간인 애니타는 싸움에 있어 무적이라는 분위기를 풍길 수 없다. 게다가 '유능한' 주인공이 위기에 빠지려면 실수를 저질러야 하기에 어설픈 구석이 보인다(심지어 따져보면 그 중요하다는 총도 자주 풀어둔다). 그렇기에 터프함이 강조되는 것은 그녀가 싸우지 않을 때이다. 이런 모습은 실제로는 나약한 인물이 억지를 부리는 것으로 느껴진다.

 

 인간 주인공이기에 갖는 어설픔을 훌륭하게 얼버무리는 것은 완급 조절의 문제다. 인간인 애니타는 약할 수밖에 없지만 유능한 뱀파이어 헌터는 강해야 한다. 이를 연결하는 것은 애니타의 성격이다. 억지스럽게 느껴지던 "나는 강하다"는 자기 세뇌가 뒤로 가면 "강해지겠다"는 다짐으로 보다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녀가 억지스러울 정도로 강력한 다짐이 아니면 상대할 수 없는 적을 죽이고 있고, 싸울수록 더욱 강한 의지로 똘똘 뭉치게 된다는 점이 납득이 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애니타의 치열함이 덜 선명한 [달콤한 죄악]보다는 후속작인 [웃는 시체]와 [저주받은 자들의 서커스]가 더 재미있다. 첫 권을 읽고 던진 후 한참 후에야 다음 권들을 찾아 읽었는데, 갈수록 이야기 솜씨가 일취월장한다.

 

 찾아보니 [달콤한 죄악]이 작가의 데뷔작이었단다. 장기 연재만화의 그림체 변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국내에는 3권만 묶여 나왔지만 원작은 14권이 나왔다고 한다. 로맨스보다는 총질과 시체와 유혹이 짙게 나타나므로, 취향에 따라 고르시길.

 

 

 

3. 머시 톰슨

                             

이름

메르세데스 톰슨

직업

자동차 정비공

나이

20대 후반

외모특징

혼혈

특수능력

코요테로 변신 가능

유령과 대화

 

체력 ★★★★
근력 ★★★☆
외모 ★★☆
지력 ★★★★
마항력 ★★★★★
근성 ★★★★
독립심 ★★★☆
눈치 ★★
로맨스 ★★☆



[문 콜드] 외 5권(미번역)

 

 

 주인공 머시 톰슨의 풀 네임은 메르세데스, "폴크스바겐 정비사 메르세데스"다. 그녀는 독일산 자동차 전문 정비공이다. 전문 분야는 폴크스바겐이지만 메르세데스 등 독일 차라면 전부 다룬다. 그것도 오래된 차 전문. 그녀와 처음 만날 때는 "여자 정비공이라니 특이하군" 같은 소리는 하지 않는 것이 점수를 따기에 좋을 것이다. 이름(Mercy: 자비)으로 놀리는 것도 좋은 선택은 아니다. 지겹도록 들었을 테니 말이다.
 
 대학에서는 역사학을 전공했지만 어쩌다 보니 정비공이 되었다. 그녀에게 기술을 가르치고 가게를 물려준 "지"는 요정이다. 요정이라도 가녀리고 파닥거리는 쪽이 아니라, 수염을 잔뜩 기른 완고한 할아버지 쪽이다. 대부분의 요정은 쇠를 다루지 못하지만, 지는 드물게도 강철을 다루는 대장장이 계열 요정이다. 혹은 그는 요즘 식으로 그렘린이라고 표현하길 선호한다. 그녀에게 가게를 넘기면서 은퇴했지만 손이 무뎌진다며 종종 찾아와서 솜씨를 부리곤 한다. 부탁하면 가게를 대신 봐주기도 한다. 이외에도 변장의 귀재인 비밀경찰 친구가 가끔 놀러 오고, 단골 고객 중에는 뱀파이어가 있다. 스쿠비 두를 매우 좋아하여 차를 통째로 그렇게 꾸민 괴짜다. 뒷집에는 성질 급한 늑대인간 우두머리가 산다. 매력적이고, 덤으로 사랑스러운 10대 딸도 딸린 이혼남이다. 그리고 머시 자신은 코요테로 변신할 수 있는 워커(walker)다. 그녀는 가끔 코요테로 변해 토끼 사냥도 할 겸 밤 산책을 나간다.
 
 워커는 가죽을 뒤집어 쓰고 변신하는 남서부 인디언 부족의 마녀, 스킨워커(skinwalker)에서 나온 말이다. 실제로는 그냥 변신 능력자일 뿐 가죽 같은 건 필요 없지만 말이다. 늑대인간은 본능에 따라 고통스럽게 변신해야 하지만, 워커는 원할 때 빠르고 가뿐하게 전환이 가능하다. 워커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오래 전에 사냥 당했기 때문에, 결혼을 잘 못 하기 때문에, 혹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등등의 이유다. 그녀도 어머니가 서커스단에 들어가겠다고 집을 나오거나, 로데오 선수와 관게를 맺을 정도로 정도로 힘차고 별난 인물이 아니었으면 무사히 자라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워커의 피를 이어받지도 않았을 테고.
 
 그녀의 부모는 반이 코요테인 딸을 어떻게 길러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인간 사이에서 자라는 것이 좋지 않으리란 점은 알았다. 머시는 어릴 적부터 늑대인간 무리에서 자랐다. 이 동네 늑대들은 진짜 늑대답게 대가족을 형성하고 권력관계에 예민하다. 힘에 따라 서열이 매겨지고, 가장 강한 자가 우두머리가 된다. 늑대 무리의 알파는 무리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마법적인 카리스마를 행사할 수 있다. 그리고 늑대는 코요테보다 강하다. 두목인 브란은 그녀를 딸처럼 받아들였지만 그게 전적인 보호를 뜻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진짜 늑대들보다 훨씬 신중하게 처신해야 했다. 늑대인간을 정면으로 거슬러서는 안 된다. 영역을 함부로 침범해서는 안 된다. 우회해서 살살 긁는 방법은 매우 효과적이다. 예를 들면 뒷집에 사는 늑대인간 아담은 머시가 사는 트레일러가 그의 집의 품격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답으로 그녀는 고물에 가까운 차 래빗을 뒷마당에 세워놓는다. 뒷집에서 아주 잘 보이는 곳에, 아담이 내다볼 때마다 "저 꼴불견 좀 내 눈 앞에서 치워!" 하고 생각하도록.
 
 머시의 상황 파악은 매우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다. 그녀는 인물들 사이에 벌어지는 기싸움을 읽어내는 데 재주가 있다. 머시에게 애인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관계를 파워게임으로 해석하는 데 너무 능숙하다 보니 로맨틱한 연애에 환상을 품질 않기 때문이다. 이는 첫사랑의 실패와도 관련이 있다. 늑대인간 무리에서 10대를 전부 바쳐 사랑했던 새뮤얼과 사랑의 도피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떠나기 전날 그가 원하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아이를 낳아줄 여자라는 것을 알아버린 것이다. 늑대인간 여자는 주기적으로 변신에 시달리기 때문에 임신과 출산 가능성이 매우 낮다. 코요테와 늑대는 같은 개과다. 이런 늑대들 앞에서 연애 감정이 무슨 소용이람, 하고 자유로운 코요테답게 도망쳐버렸단 이야기다.
 
 그러다 보니 연애 떡밥은 가뭄에 콩 나듯 떨어진다. 그게 묘미다! 대놓고 노출하는 것보다 흘끗 엿보이는 속살이 더욱 자극적이듯, 메마른 묘사 속에 가끔 등장하는 달콤한 분위기가 훨씬 마음을 두드린다. 뒤로 갈수록 촉촉한 초코칩이 되지만 말이다. 뒷집 아담은 섹시하고 혼자고 알파답게 매력적인 카리스마를 발산하고, 첫사랑이던 새뮤얼은 여전히 자상하고 속속들이 이해하며 소유욕이 강하다. 머시가 아담과 데이트를 하고 돌아온 뒤, 룸메이트인 새뮤얼이 나누는 가시 돋힌 대화는 참 자극적이다. 좋은 로맨스에는 개념 있는 여주인공이 필수다. 섹시한 남주인공들은 덤이다.
 
 머시 톰슨 시리즈는 현재 6권까지 출간되어 있다. 아직 연재 중이며, 권수를 거듭할수록 표지 그림의 머시에게 문신이 늘어난다는 점이 흥미롭다. 영화 판권이 팔렸다니 영화화를 기대해볼 수도 있겠다. 로스앤젤레스 같은 대도시에서도 코요테는 번성한다. 코요테마냥 자유롭고 영리한 여주인공 머시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길 바란다.



 
 어반 판타지는 다른 시대, 다른 세계로 물러나 있던 존재들을 현대로 새롭게 불러낸다. 도시, 과학, 현대 문물과 과거의 신비를 결합한다. 어반 판타지에 깔린 로맨스 요소는 초자연적 존재들을 인격체로 해석하려는 시도 뒤에 생겨났다. 연애는 대등한 존재끼리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냥꾼-먹잇감, 괴물-피해자 관계로는 불가능하다. 어반 판타지를 통해 우리는 보다 친근하고, 이해 가능하고, 세련된 전설들을 얻었다. 동시에 로맨스로서는 매력적인 종족적 클리셰를 얻었다. 뱀파이어나 늑대인간, 변신 능력자에게 연심을 품을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한편으로, 초자연적 존재들이 개별 인물이 아니라 사회적 현상으로 드러나는 점도 흥미롭다. 커밍아웃 방법과 반향은 조금씩 다르지만, 최근의 어반 판타지에서는 초자연적 존재들이 사회의 일부로 인정받는다. 혹은 인정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나온다. 수키 스택하우스 시리즈에서는 '트루 블러드'로 뱀파이어가 덜 위험해졌으며, 애니타 블레이크 시리즈에서는 영장 없이는 뱀파이어를 죽일 수 없다. 머시 톰슨 시리즈에서는 "요정"들에 이어서 늑대인간들도 커밍아웃을 준비한다. 이는 어반 판타지 흐름에서 도시 밖의 신비들과 현대 사회와의 결합이 한층 진전되었기 때문에 나오는 풍조이리라 생각한다.
 
 로맨스 요소가 없어서 여기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차이나 미에빌의 [쥐의 왕], [퍼디도 스트리트 정거장]도 훌륭한 어반 판타지로 읽을 수 있다. 프리츠 라이버의 [아내가 마법을 쓴다]는 어반 판타지의 효시로 꼽히는 작품으로, 초자연적 존재보다는 마법 자체를 도시-과학-일상과 결합한다. 주술의 반작용으로 인해 소용돌이처럼 무너지는 분위기 연출이 매력적이다. 닐 게이먼의 [신들의 전쟁]은 이주민들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와 말라비틀어진 신들이 현대에 새로 생겨난 신들(TV의 신이라든가)에 대항하여 벌이는 전쟁을 다룬다. 낯선 땅에서 힘을 잃은 오래된 신들이 어떻게 변질되는지, 그 모습을 현대 미국 작가로서 그려낸다(이 책의 원제는 [American Gods]다).

 그리고 보다 욕심을 부리자면, 로저 젤라즈니의 [고독한 시월의 밤]을 추가하고 싶다. 시대적 배경은 근대쯤이지만, '뱀파이어, 늑대인간, 마녀 등이 등장하며 여러 가지를 결합했다'는 점에서 연관이 있다고 우길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매력적인 장르다.


* 이 글은 웹진 <판타스틱>의 기획기사로 작성되었습니다.

http://cafe.naver.com/nfantastique/4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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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키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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