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모리 고의 추리소설 단편집. 좋게 말하면 고아하고 정취있는 글이다. 대놓고 말하면 술에 물탄듯 물에 술탄듯 밍밍한 분위기가 난다. 트릭보다는 인물의 사연에 집중하고, 날선 목소리로 범인을 지목하기보다 사건의 이면에 있었을 법한 일들을 추정하며 제삼자들이 맥주 한 모금을 넘기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첫 단편이자 표제작인 <꽃 아래 봄에 죽기를>은 자기 신상에는 입을 다문 채 쓸쓸하게 죽어간 나이든 하이쿠 시인 소교의 생애를 쫓는다. 이 단편의 화자로 소교의 고향을 추적하는 이지마 나나오는 20대 후반의 프리랜서 작가다. 생전의 소교를 애틋하고 안쓰럽게 생각하고 있던 그녀는 '꼭 고향으로 돌려보내 드릴게요'라며 몇 번이고 다짐한다. 

 이후의 단편들도 농담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굳이 추리소설로 분류하지 않아도 괜찮을 정도로 얌전하고 감상적이다. 다만 먹고 마시는 장면이 계속 나오는데 그게 강렬해서 책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책에서 공통된 배경으로 그려지는 것은 신타마가와선 산겐자야 역 근처 골목에 위치한 맥주바 가나리야다. 그리고 탐정 역할을 하는 것이 가나리야의 주인 구도 데쓰야다. 손님들은 각자의 이유로 가게를 찾고, 구도는 각 손님에게 맞는 맥주 한잔과 그냥 맥주바에서 다루기는 아까울 정도로 훌륭한 안주를 내놓는다. 그렇게 먹고 마시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수수께끼 놀이가, 고민 상담이, 시덥잖은 이야기에서 간절한 사연까지. 손님들은 너무 지쳤거나 혹은 이야기에 몰두해서 중간중간 나오는 안주에 소홀해지기도 하지만 그 묘사는 대신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구도가 내놓는 첫 접시는 이렇다. 


 "올해 마지막 동과를 다진 고기와 함께 졸이고 칡으로 찰기를 더해 보았습니다. 콩소메 맛이라 맥주와 잘 어울릴 겁니다." (17p)


 동과는 대체 무슨 맛인가. 동과는 박과 식물에 속하고, 겉은 종류에 따라 애호박이나 무처럼 생겼고 속은 오이나 참외처럼 생겼다. 무처럼 살짝 아리고 아삭한 맛이라고 한다. 무와 비슷하게 생채나 조림으로 먹거나, 아니면 볶거나 쪄서 먹는다. 고기와 함께 졸였다면 양념이 배어 간간하면서 무르게 씹힐 것 같다. 칡으로 찰기를 더한다는 말도 낯선데, 생각해보니 칡도 먹어본 적이 없어서 그렇다. 뿌리를 먹으니 마나 토란처럼 갈아낼수록 끈적한 맛이 날 것이고, 검색해보니 씹다 보면 은은한 단맛이 난다고 한다. 게다가 이 모든 조합은 콩소메 맛이다. 콩소메는 야채를 넣고 끓여 걸러낸 맑고 담백한 고깃국물을 말한다. 그렇다면 이 안주는 국물이 별로 없이 양념이 깊이 배어 은근한 단맛과 부담스럽지 않은 감칠맛을 내는 요리일 것이다. 먹어보지 않으면 무슨 맛인지 모르겠지만, 맥주와 잘 어울린다니 그걸로 되었다.

 두 번째 단편부터는 가게에서 손님들이 나누는 대화가 주축이 된다. 만약 퇴근 후 단골 가게에 찾아가 주인이 내주는 술에 몸을 맡기는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다음의 문장이 무슨 뜻인지 알 것이다.


 "무엇으로 드시겠습니까?" 구도가 물었다.

 "도수가 조금 높은 것으로."

 "괜찮으십니까?"

 "철야를 며칠 했을 뿐이야. 오늘은 술에 취해 푹 자고 싶어."

 그런 짧은 대화를 나누고 구도는 네 개의 비어서버 중 가장 안쪽의 금속 꼭지에 필스너 글라스를 갖다 대었다. 이 가게에는 알코올 도수가 다른 맥주가 네 종류 있다. 구도는 그중에서 가장 도수 높은 맥주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늘 마시던 맥주에 비해 황금빛이 훨씬 진해서,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끌려들 것 같았다. 글라스의 내용물에 입술을 대자 먼저 차가움, 다음에는 발포성 음료 특유의 신맛이 잇몸에 섞이고 스며들었다. 맛있다는 말 대신에 한숨이 새어나왔다. (67p)


 또한 등장하는 안주 중 가장 호화로운 것은 청주와 간장으로 간하고 버터로 마무리한 가리비 요리다.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두 남자에게 노다도 같은 인사를 하는 동안, 구도가 무럭무럭 김이 솟아나는 납작한 접시를 가지고 왔다. 납작한 접시로 보였던 것은 가리비 껍데기였다. 그것도 보통 크기가 아니다. 프로레슬러의 손바닥을 확대한 것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커다란 가리비 껍데기였다. 그 가장자리까지 맑은 수프가 가득 담겨 있었고, 드문드문 하얀 살이 비쳐 보인다. 그리고 길고 가는 살이 몇 점. 수프에 떠 있는 기름 막에서 버터 향기가 강렬하게 코로 돌진한다.

 "삼 년산 가리비입니다."

 그 말을 들어도 노다는 뭐라고 대꾸할 말이 없었다.

 "코키유(coquille, 조개껍데기에 재료를 담아서 굽는 서양 요리)라기보다는 '전골'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살아있는 가리비를 껍데기째 사용해 보았습니다. 양념은 청주와 간장뿐이고, 마무리로 버터를 조금 넣었습니다. 요란하죠?"

 식기 전에 어서 들라는 권유에 마침내 노다는 젓가락을 들었다.

 "어떻습니까?" 구도가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물어도, 솔직히 노다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계속된 철야로 미각이 생각보다 둔해졌기 때문이다. 혀끝에 비닐이라도 덮어 놓은 것처럼 맛이 어딘가 멀리서 느껴졌다.

 맥주로 입안을 헹구고 다시 젓가락질을 하자 조개 특유의 감칠맛이 훨씬 깊어졌다. 희미하게 붉은 기가 남아있는 살을 입안에 넣자 지금껏 먹은 섬유질의 감촉과는 별도로, 이번에는 끈끈한 페이스트 느낌의 감칠맛이 났다.

 온몸으로 그 맛을 느꼈다.

 수면 부족과 과도한 흡연으로 식욕 따위는 어딘가 깊은 곳으로 숨어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맥주가 생각지도 못한 빠른 속도로 없어졌고, 조갯살이 기분 좋을 정도로 담백하게 목을 통과한다.

 볼썽사납지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조개껍데기에 입을 대고 남은 수프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비운 후, 맥주를 추가로 주문했다." (68-69p)"


 덕분에 이틀 연속으로 야식을 챙겨먹고 이 글을 정리하는 오늘도 야식거리를 꺼냈다. 먹는 묘사를 읽을 때는 사치를 부려 좋아하는 먹거리를 한 입 한 모금 먹는다. 묘사에 지지 않을 만큼 맛있는 것을 마련하지 못하면 읽기를 미뤄두기도 한다. 구도가 내놓는 맥주와 요리처럼 군침 도는 푸드 포르노는 언제나 환영이다. 해설에서는 [꽃 아래 봄에 죽기를]을 두고 "아유카와 데쓰야의 '긴자 3번관'을 계승하는 바텐더 탐정물"이라는 언급이 나오는데, 눈이 번쩍 뜨여 얼른 찾아봤으나 이 시리즈는 번역은 안 된 모양이다. 아유카와 데쓰야의 책은 [리라장 사건](1958)만 읽어봤다. 이쪽도 고풍스러운 추리소설이었다. 다만 [꽃 아래 봄에 죽기를](1999)처럼 애잔한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은 아니었다. 58년작이라서 아무리 인물 간에 애증이 교차하고 싸움이 횡행해도 필터를 하나 끼운 듯 멀리서 읽히기 때문이다. 구도 데쓰야의 이름이 혹시 아유카와 데쓰야의 이름에서 나온 것인지 궁금한데.

 기타모리 고의 소설이라면 '가나리야 마스터'시리즈 2부인 [벚꽃 흩날리는 밤]도 나와있다. 여전히 맛있는 요리들이 나오는 모양이다. 출판사 피니스 아프리카에에서 낸 다른 시리즈로는 '가마슈 경감' 시리즈도 추천한다. 퀘벡 주의 한적한 마을 스리 파인즈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코지 미스터리다. 칙릿과는 관련이 없고, 애거서 크리스티의 미스 마플 시리즈처럼 단촐하고 조용하되 인간 내면에 깃든 어두움을 본다. 저자인 루이즈 페니는 지금까지 수상한 애거서 크리스티 상으로 축구팀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인지도를 획득한 작가다. 그리고 여기 스리 파인즈에서도 사람 마음을 데워주는 맛있는 아침식사가 나온다. 꼭 그래서 좋아하는 것은 아니나 분명히 좋아하는 점이기는 하다.


Posted by 라키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