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여성 살해'사건 관련 긴급 집담회]
대한민국 젠더폭력의 현주소

2016년 5월 26일(목) 오후 7시
서울시청 8층 다목적홀
주최: 한국여성단체연합 인권위원회(새움터,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장애인연합,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후원: 한국여성재단

발제문 다운로드 링크

* 들으면서 적었으므로 본의 아니게 생략된 부분이나 바뀐 표현이 있습니다.
* 현장의 발제 중심으로 적되 발제문을 참고해 보충했습니다.
* 소제목은 임의로 나눈 것입니다.


사회: 김금옥,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인삿말 및 소개 (생략)

발표

1. 김수아: 우리 사회 '여성혐오'의 보편성과 특수성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 온라인 문화 중심으로 연구.

여성혐오?
- 여자라면 환장하는데 무슨 여성혐오냐고. 이게 남초 커뮤니티에서 많이 본 말. 그런데 인간이 인간에게 '환장한다'는 거. 그 문제를 모르는 거죠. 지금은 많이 알려졌다고 생각한다. 가부장제를 구성하고 성차별주의를 구성하는 기초로서의 여성혐오. 남성상을 완성하기 위해 여성을 멸시하는 구조.
- 누스바움은 여성혐오의 핵심을 대상화라고 봤다. 여성을 수단으로 취급하거나, 동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는 것.
- 물론 최근에야 나타난 것은 아니다. 가부장제의 역사와 함께. 그리고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동시대에 다른 곳에서도. 잡지의 <김치녀 백년사>에 실렸던 글들. "이대생은 하이힐을 벗고 단화를 신으라"고 시위하던 게, 지금은 "스타벅스에 가는 여자가 된장녀인 이유"로 올라온다.
- 온라인 여성혐오를 끝내자는 캠페인을 하는 영국 등의 단체 활동을 보면. 주로 강간 위협으로 나타남. 여성혐오는 성에 기초한 폭력이 만연하게 만드는 배경. 그리고 이에 문제를 못 느끼게 하는 정서적 배경.
- 이 정서라는 게, 단순 감상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생활의 차이로 이어진다. 화장실, 도로 등 물리적 공간은 어느 성에게나 동등하지만 생활세계에서는 다름. 차이가 집합적으로 모임으로써 남성의 생활세계와 여성의 생활세계는 달라진다. 구조가 체화되어 나타나는 여성혐오가 실제 생활세계를 침범할 뿐만 아니라 생명마저 침해하는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원인과 문제점 1. 여성의 시민권 부정
- 기본적인 원인은 가부장제적 헤게모니다. 경제 위기는 남성에게만 나타나는 게 아니니까, 이걸 남성만의 위기라든가 여성혐오 원인이라고 할 수 없음. 헤게모니의 붕괴에 위협감을 느끼는 것.
- 구체적으로
1) 여성은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것은 부당하다, 자격이 없는데 떼를 쓴다는 생각이 있었음. 여성의 권리 주장은 부당하다고.
2) 성에 대한 여성의 권리를 부정, 성적 시민권을 부정. 성녀/창녀 이분법. 유학 다녀온 여자는 더럽다.
3) 남성의 피해자성을 계속 구성하려고 하는 것. 피해자는 남자 뿐이다. 역차별. 여자를 못 만나서 여성혐오한다고 함. "아다 스웩". 이성애성과 관련한 피해자성이 온라인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여성을 획득, 차지하지 못해서 나는 이등 남성이 되었다는 호소. 그리고 그 원인을 경쟁 등이 아니라 나를 부정한 여성에게 묻는다. (직접 경험하지 못했을) 십대들도 똑같이 이런 말 하고.

원인과 문제점 2. 인터넷, 저널리즘.
- 여성혐오가 격해지는 원인을 1) 인터넷 문화 2) 저널리즘에서 찾고 있다. 여기서 강화, 재생산. 사회적 무의식의 집단화, 가시화.
- 구체적으로
1) 저널리즘은 어떤 의견이 중요한지, 우리 사회의 공공선을 위해서는 어디에 귀기울여야 하는지 알려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현재 언론은 여성혐오와 관련해서 책임 있는 주장이나 들어야 하는 의견을 선별하기는커녕 이를 다른 것과 동등한 의견처럼 다룬다. 그래서 반대쪽(김치녀 서사 등)도 마치 사실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실제로는 동등한 상태가 아닌데도 마치 동등한 주체들이 갈등/대립하는 것처럼 보도해서('여혐'과 '남혐') 똑같은 거라고 만들어버림.
- 그리고 항상 네티즌 의견을 반영한다. 근데 이걸 분석하진 않음. 어떤 배경의 누군지 전혀 모른다. 네티즌을 인용하면서 그게 어떤 사람인지는 전혀 나오지 않은 채, 동등한 의견인 것처럼. 이게 정당한 것처럼. 형식적 객관주의.
(여성혐오는) 언론이 키워준 것이나 다름없다.
2) 인터넷. 집단국가 현상 심해짐. 의견 동질화 현상. 집단 극화. '혐오'로 묶인 혐오집단 생김.
그런데 여성혐오는 농담으로 유통됨. 재미있는 게 중요하고, 재미있으니까 유통된다. 패러디, 유머의 형태로 폭력과 차별이 퍼짐. 이게 재미있는 거라고 교육받은 거나 마찬가지다. 페이스북이 왜 그러는진 모르겠는데 한국 말고 미국에서도 마찬가지. 페이스북은 차별이나 여성혐오 인종차별 등에 대해 매우 미온적으로 대처해왔음. 재미있다고만 하면 제재하지 않았다. 재미있고, 그러니까 즐겁고 사소하고 아무것도 아니고 화내면 이상한 일로 만듦.
근데 유머 수준이 아님. '오빠 차 뽑았다 널 데리러 가' 패러디 '오 빠따 뽑았다 널 때리러 가'. 이게 뭘로 쓰이겠어요. 여성을 공격하겠다는 뜻으로 쓰임. 그럼에도 유머로 통해서 폭력을 정당하게, 사소하게, 당연하게. 그리고 실제 폭력으로 이어지는 데 걸림돌이 없게.

연대
- 피씨통신 시절, 여성이 20%던 시절에도 온라인은 여성혐오의 온상이나 마찬가지였다. 본격화된 건 군가산점제 폐지 논란 이후. 여성 개개인에 대한 공격이 정의의 이름으로 남성에 의해 실현됐다. 그런데 페이스북은 실명제가 가능하고 개인의 네트워크가 공개된다는 점 때문에, 실제로 위험하고 생활세계를 침범하는 수준에 이름. 더군다나 이들을 계속 감시한다. 여성에 대해 글 쓰는 페이지를 감시하고 공격하고, 여기에 우호적인 댓글 다는 사람 페이지로 들어가서 공격 쪽지를 날리고, 이렇게 네트워크를 타고 옮겨다니면서. 위협을 퍼뜨리고 강화한다는 점.
- 온라인에서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조차. 여성들은 세게 말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말하는 경우도 많은데. 조근조근 말하는 사람들도 공격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에서. 여성 집단 전체의 발화를 막는 효과. 이를 어떻게 혼자 싸우지 않게 할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 연대를 통해 생활 세계의 침해를 막아야. 고립되어 혼자 싸우고 있는 게 아니라고.


2. 이나영: '살아남은' 우리는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 혐오, 미쏘지니, 젠더폭력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선생님 막말 멋있어요

제가 페북을 올해 1월 초부터 시작했어요. 일본군 위안부 문제 때문에 빡쳐서, 안 하면 안 되겠다 하고. 덕분에 이 자리에 왔습니다. 안 했으면 어쩔 뻔 했어. 저희 페친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발제문 제목은 복잡한데, 이 사건을 어떻게 볼 것이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제가 오기 10분 전까지 써서 말과 내용이 다를 수 있다.

무시당했다는 반응은 무시하던 사람의 것
- 남자의 살해 동기는 "무시당했다는 느낌". 굴욕감. 그건 대등하지 않은 사람에게 갖는 것이다. 아버지들은 어머니가 의사표현을 하면 '뭘 안다고' '날 무시해서 그래'라고 쉽게 언어화하고 대응함. 그러나 자기 아버지, 상사, 선배에게 당할 때는 무시당했다고 공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 무시당했다, 굴욕감, 대응. 평소에 여자를 무시하던 사람들의 반응이다. 여성을 무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여성에게 무시당했다고 느낀다. 결국 '여자들이 날 무시해서'는 '이것들이 감히 나 남자를 무시하다니 용납할 수 없다'는 표현. 우월적 지위의 상징이자 도구.

여성혐오 현상
- 강남역 출구 앞 길거리에 새겨진, 성폭력에 대한 호소들. 여성들 자신의 기억을 상기하는 것이자 해석의 과정이며, 자기 미래에 닥칠 죽음에 대한 애도이기도 하다. 여자라서 멸시당하고 강간당하고 죽어왔지만 표현되지 못한, 표현하지 못한 '내'가 소환되는 상황이다.
- 페미사이드. 젠더폭력. 예외적인 게 아니라 너무나 보편적이고, 이 불편한 구조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져왔다는 것. 영화 <곡성> 감독의 <추격자>. 사이코패스의 행위로 만들어서 범죄를 탈맥락화, 탈역사화.
- 경찰, 언론의 상당수는 묻지마 살인이라고 이름붙임. 묻지마 살인인가 여성혐오 범죄인가. 가해자가 조현병이라는 것과 여성혐오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여성혐오는 최근의 일인가. 이건 젠더전쟁인가. 이런 게 지난 일주일 간 언론에서 무수히 받았던 질문입니다. 오늘도 똑같은 질문을 받아서, "입닥치고 여기 와라"고 말했습니다. (일동 박수)
- 2012년 한국여성단체연합 토론회. 당시 여성, 아동을 대상으로 한 폭력사건들. 예외적인 일들로 놓지 말라고. 구조적 변화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는 생각을 차단하고, '어쩔 수 없는' '불행한' '예측 불가능한' 피해라고 암시함으로써, '일부' '이상한' 남성에게서 안전하기 위한 '일반' 남성들의 품으로 의존하도록. 무력감. 불안감. 결국 남성과의 정치적 (협상) 문제로 환원된다. 일시적인 것도 우연도 아님. 오래된 분석.

여성혐오, 젠더폭력, 남성의 자기분열
1) 잘못된 문제설정
- 남성 우월주의(male supremacy), 남성중심 사회. 젠더 폭력의 징후적 표출이 핵심.
- 그럼 혐오란 무엇이며 어떻게 해석되는가. misogyny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제가 참고한 책에서는 sexism과 misogyny를 같이 놓고 가끔 male supremacy를 언급했다. misogyny와 male supremacy는 공통적으로 남성이 일방적으로 하는 것. 여성혐오라는 말은 일본 번역어이고 일본 학자가 이해한 방식임. 그런데 한국에도.
- 강신명 경찰청장의 주장. 대책으로 3개월간 특별 치안, 정신질환자 특별 관리하겠다. "오빠 국가"와 보호대상으로서의 여성 이미지, 그리고 질병에 낙인 찍기를 이야기함. 그러면 현재의 차별적 구조와 위장적 평화가 유지된다. 가부장적 국가의 지위는 유지되겠죠. 무엇이 사건의 본질인지 모르려고 하면서 동시에 원인을 재생산, 강화함. 그래서 이걸 성차별 사회의 자기분열적 칼춤이라고 표현하겠다. 정신분열 환자가 문제가 아니라 자기들이 정신분열인 것. 제가 만든 말은 아니고요. 성차별적 위계와 맞물리면서 분열적으로 행동한다는 건 오래된 분석.

2) 혐오: hate
- 혐오가 꼭 감정을 말하는 게 아님. '난 여성 안 싫어하는데?'가 여성혐오 아닌 게 아님. 다양한 양태가 포함.
- 페미니스트 정신분석학자 낸시 초도로우. 생물학적 공격성은 남녀 차이 별로 없음. 증오는 구성되는 것. 남성의 혐오(hate)와 굴욕감은 여성혐오 문화(misogyny)를 통해 역동적으로 구성된다. 굴욕감 → 중오  폭력행위.
- 건강은 주체는 자아(self)와 대상(other)으로 구성. 그런데 젠더위계, 성차별, 여성혐오 사회에서 남성은 자아와 대상을 분리해서 남성성 주체로. 헤게모니에 맞는 '남자다운' 남자를 '좋은 것'으로 놓고 동일시하면서, '나쁜 것'은 여성성으로 투사하고 (자신과) 분리한다. 남성다움은 여성답지 않은 것. 나쁜 것은 여성다운 것이고, 여성다운 것은 나쁜 것. 그래서 대상other은 자기가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으로 형성됨. 따라서 주체인 자신을 분열증적으로 내면화한다. 자아든 대상이든 자기인데.
- 피해의식. '나쁜 것'인 대상이 '좋은 것'만 분리해낸 자아를 공격한다고 느끼기 때문에, 대상을 공격하려 한다. 증오는 결국 방어기제로. 증오가 심할수록 자아/대상의 분열이 극단적으로 배가된다. 특히 성인 남성은 수치를 당했다고 느낄 때, 아니면 다른 남성에게 패배했다고 느낄 때, 이걸 자아(실제로는 자기가 보호하고 싶은 자아의 한 요소)에 대한 도전으로 느끼고 극단적인 폭력으로 대응한다.
- 이는 개인적인 것만은 아님. 미국 9.11 테러에 반응한 남성들의 극단적인 모습을 분석한 결과 문화적 집단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자기 집단에 대한 굴욕감으로 느끼고 집단적 행동. '그들'과 '우리'를 분리하여 정당화 과정을 거친 후, 자신이 (자기 때문에) 느낀 위협감을 타자/대상/그들을 실제로 공격하는 것으로 표출. '남성성'의 폭력.

3) 혐오: disgust
- 마사 누스바움은 증오hate보다는 역겨움disgust을 분석. 더럽다는 것. 이게 한국에서 여성에게 많이 하는 일이다. 성적으로 방종한 여자는 더럽다. 그런데 이 더럽다는 감정은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 상대적 약자인 타자에게 혐오를 구현하고, 그럼으로써 그들을 배제하고 주변화한다. 하지만 타자에게 구현된 혐오는 사실 그가 날마다 대면하기 힘들어하는 자기 자신에게서 나오는 문제다. 그래서 혐오는 결국 자기 자신을 감추는 자기기만, 자기분열적 기제.
- 자아와 대상은 주체를 구성하는 한 쌍이기 때문에, 대상에 대한 공격은 자아에 대한 공격이 된다. 자기가 투사하고 자기가 분리했으므로. 주체는 내파됨. 자기모순에 빠진 슬픈 남성성. 우리가 어떻게 구해줄 수는 없고, 그들 스스로 비대칭적이고 위계적인 젠더 질서에서 형성된 '남성성'/'여성성'을 극복해야 치유될 수 있다. 안됐죠.
- 그래서 이번 사건에서 보인 남성들의 격렬한 반응은 그 자체로 성차별 사회의 징후. 헤게모니 남성성과 동일시하려는 자아 유지 전략이자 방어기제인데, 실패함. 우월적 남성에게 인정받아야 살 수 있는 슬픈 처지라는 반증이기도. 그러나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야기한 공범적 사회 구조를 보지 못하는, 보지 않으려는 바로 그 모습이 또 그런 사회 구조의 하층부를 공고히 한다. 결국 그들이 보호하는 것, 그리고 실제로는 그들이 적으로 삼아야 할 대상은, 헤게모니 남성성 혹은 위계구조의 최상위층 남성들인 셈인데. 젠더 위계가 자길 위한 특권이라고 믿고 과잉 자기방어 하니까 결국 자아의 내파.

4) 젠더폭력, 페미사이드
- 페미니즘은 오래 전부터 '젠더폭력' 명명. 젠더폭력이란 "여성들이 특히 많이 경험하는 폭력의 형태,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이나 여아가 피해자가 되는 폭력의 형태일 뿐만 아니라, 성별위계질서에서 배태한 폭력이자 남성(성)의 권력을 확인하고 강화하는 기제가 되는 폭력"이다. 이 사건이 젠더폭력인 이유는 성차별적 사회에서 구성된 '남성성/여성성의 위게적인 젠더 질서(물리적이든 상징적이든)를 확인하고 강화하는 폭력'이기 때문. 젠더폭력은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말이지만, 그럼에도 폭력의 구성 과정과 연계를 이야기하는 데 적절한 개념이기도.
- 여성살해(femicide). 다이애나 러셀은 1992년에 책 [여성 살해: 여성 살해의 정치학]에서 '여성 살해'를 두고 범죄심리학이 '성'을 보지 않는다고 비판한 바 있음. 페미사이드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혐오적 살해다. 카푸티(Caputi)는 여성살해가 정신이상자, 일탈자의 일부 행위가 아니라 가부장적 역할, 가치, 욕구, 힘의 규칙이라는 일련의 과정에서 논리적으로 이어지는 다음 단계라고.
2012년에 러셀은, 워먼이 아니라 페미니티를 강조하며(꼭 여성의 몸이어야 당하는 건 아니므로), 피메일이라고 살해하는 남성의 범죄를 페미사이드라고 다시 못박음. 성차별 구조를 징후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 남성 중심의 학계에서는 페미사이드라는 말은 거부됨. 중립적으로 보이는 제노사이드로 대체되는 경향이 있다. 역설적으로 여성에 대한 경시, 무시를 드러내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음. 여성 스스로 이건 페미사이드다, 라며, 그리고 다층적 저항을 하는데 이를 무시하는 남성의 지배 구조.

한국, 여성혐오라 이름짓기
- 기자들이 많이 묻는다. 왜 여자들이 갑자기 튀어나왔냐. 이제까지 가만히 있다가.
- 이전에는 '순결한 여성'에 맞는 '절대적 피해자'만이 보호받을 자격이 있다고. 젠더폭력의 심각성이 드러나지 않음. 여성동일시 실패. 그러나 지금은 '일반 여성'의 문제임이 드러남. 여성으롯 갖게 된 불안, 공포, 경험을 돌아보고 가시화. 다른 여성들의 경험에 공감하는 청중의 탄생.
- 광우병 사건 때 여성들이 많이 나오셨잖아요. 근데 저는 이번이 굉장히 새로운 주체의 탄생이고. 이 사건을 읽을 수 있는 공감대가 드디어 형성됐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오래된 여성운동의 토대가 있던 덕이라고 당연히 인정합니다. 이건 인정해야죠. 이제 여자도 공부는 하잖아요. 예전에는 여자는 학교도 못 갔는데. 이제 대학까지는 평등하게 간다. 근데 대학과 대학 이후에 불평등과 마주하고 차별을 체감하고. 이를 어떻게 이름붙여야 할지 모르고 있다가. 온라인에서 메갈리아 등으로 발화.
누가 메갈리아 이게 페미니스트냐고 물었는데, 아니 그렇게 묻는 너는 페미니스트니? 페미니스트는 되어가는 것이다. 단계는 다르지만 페미니스트가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저한테 여성학 배우는 거 아니잖아요. 자기가 스스로 배우고 경험하면서, 지식의 육화를. 육화된 지식은 누구도 가져갈 수 없어요. 공사가 분리된 게 아님(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살면서 느낀 것들이 형성. 나만 무시당한 게 아니구나, 쟤도 무시당했구나. 그리고 온라인에서 동의해주는 사람들 있음. 부당함의 영역이 확장됨. 혼자 당하는 부당함이 아니라 여성이 당하는 부당함. 그건 부정의라고 이해하게 되고. 정의의 개념으로 맞서 싸워야 한다는 생각이 자기도 모르게 생긴다.
- 정의. 새로운 언어를 창조한다. 제도화된 합리적 언어의 영역에서는 이게 부정의라는 이름이 없었음. 없는 일이었음. 새로운 언어를 만들고("여성혐오 범죄"), 대안적 공론장을 구성한다.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겼던, 객관성 자연스러움 등에 변화를 야기하고. 제도화된 것들에 반성과 비판으로 변화를 유도한다. 새 프레이밍. 수많은 대중들에게 불편함과 '경기'를 유발함으로써. 자기성찰적 집단의 재구성.
아 좀 불편해봐. 그리고 왜 불편한지 생각해봐. 너도 느껴봐야 할 거 아냐, 우린 그렇게 자연스럽게 당하고 살았는데. 
- 이렇게 부정의를 확장시키는 데 성공한다면, 공적으로 명명되는 부정의의 영역에 새로운 영역을 추가하는 데 성공한다면, 공적 이성의 프로토콜도 변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함'이 변할 것. 물론 불편하고 어렵고 주류 페미니즘과 갈등할 수도 있고... 하지만 진보성 등등을 의심하지 말라.

마무리
- "여성혐오 범죄"로 이름지을 때 예상되는 문제. 이게 범죄라는 프레임이잖아요. 그런데 프레임을 가지면 법적 영역에 갇히는 한계가 있다. 범죄라고 하면 당장 사회적 반응을 일으키긴 함. 경찰도 서울시도 (이상하긴 하지만) 당장 정책을 내놓고. 그러나 범죄와 피해자라는 이름으로 가면, 해결가능성이 경찰/법원/오빠들 등 구조적 지배적 남성적 집단의 손에 놓인다. 그러면 이 구조를 바꾸려는 시도는 비효율적이다, 돈 많이 든다, 안 된다 등등으로 가로막힐 우려가 있다. 본질적인 개선 시도에는 부정적 판단이 내려짐.
- 그럼에도. 조직화된 여성들에 주목해야 한다. 스스로 "여성혐오에 기반한 살인"이라고 정의하기 시작한 시민의 존재. 죽인 자와 죽일 자, 죽일 수 있는 자들과 / 죽은 자와 죽을 자, 죽을 수 있는 자들의 위치를 뚜렷하게 볼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여성들이 당하는 직접적, 가시적인 폭력 & 비가시적인 구조적, 상징적 폭력. 그리고 이를 연결하는 불평등한 젠더 질서. 이런 것들을 대중적으로 인지하기 시작한 것. 그렇게 '여성혐오'라는 본질을 지적함으로써, 단선적인 대책이 아니라 성차별적 남성 중심 사회구조 전반과 인식 전반의 변화를 실현. 현실에서.


3. 홍성수: 혐오표현과 혐오범죄: 법개념과 사회적 의미, 법규제와 사회적 대응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

저는 3년 전부터 혐오표현에 대해 연구해왔고요. 혐오표현이라는 문제가 혐오범죄라는 또다른 형태의 문제로 이어지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혐오범죄에 관심을 갖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혐오표현과 증오범죄
- 저는 이 사건이 났을 때 놀랐던 부분이, 한국 사회는 차별과 혐오표현이 만연해 있는 상황이라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잠재된 폭탄 같다고 생각했는데, 여성 관련해서 먼저 이슈화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가장 위험한 건 이주노동자 쪽이라고 생각했고. 성소수자에 대한 태도도 무시를 넘어 구체적인 폭력으로 나타나고 있고.
- 혐오표현(hate speech): 장애 인종 성적지향 성별 성정체성 등등 소수자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모욕 조롱 위협하거나, 차별과 폭력 적대을 정당화하거나 선동하는 것. 혐오표현의 대상은 소수자. 개인이 아니라 소수자 집단 전체에 대한 차별 폭력 적대를 조장한다.
- 증오범죄(hate crime): 저는 개인적으로 증오범죄라는 말이 더 잘 드러내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혐오표현과 마찬가지로 소수자 속성에 근거한 적대 또는 편견을 동기로 하는 범죄. 새로운 범죄는 아니고 기존의 일반적인 유형의 범죄를 저지르면서, 그 동기가 편견에 기반한 형태로 나타남. 편견이 동기일 때 가중처벌하는 게 증오범죄다. 그러니 새로운 건 아니고, 동기가 더 나쁘다는 이유로 가중처벌되는 걸 흔히 증오범죄라 부르고 있다.
- 증오범죄 미국 2014년 FBI 통계. 미국 전역에서 5462건. 인종은 47%. 젠더는 0.6%. 영국 2015년 정부 통계는 55,528건. 젠더는 범주에 없어서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두드러지지 않음. (젠더로 폭발한) 한국은 좀 특수성이 있지 않을까.
- 보편적으로 인종 등등등이 증오범죄가 일어날 수 있는 소수자 속성으로 보긴 하는데, 개별 국가마다 교육, 정치, 이데올로기 등으로 달라지기도 한다. 고정된 건 아님. 한국도 성별이나 지역 등이 동기로 나타남.
- 복합 동기도 가능하다. 여러 소수자의 특성을 동시에 갖춘 경우. 차별행위도 복합적으로 가능하거든요. 여성+성소수자에 대한 고용 차별 등. 범죄도 똑같이 복합적인 동기로 가능함.
- 사람에 대해서만 행하는 게 아니고 사물에 대해서도 가능하다. 얼마 전 서울대의 성소수자 현수막 훼손 사건. 법적으로는 손괴죄에 해당되는데 그 동기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때문이었다면 증오범죄에 해당한다.
- "증오범죄는 '진공 상태'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공동체에 만연한 편견의 폭력적 발현이다."(OSCE 보고서)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단지 그 극단적인 형태가 혐오표현, 증오범죄. 따라서 혐오표현과 증오범죄는 사회적으로 동일한 배경에서 나온다. 이걸 단계론으로 설명하는 사람도 있는데 예를 들면
예) 올포트 척도: 부정적 발언 → 기피 → 차별 → 물리적 공격 → 제노사이드/ 절멸
예2) 제노사이드 8단계론: 범주화, 상징화, 비인간화, 조직화, 양극화, 준비, 절멸, 부인
예3) 페이스북에 돌던 혐오의 피라미드론: 고정관념 등 편견 → 괴롭힘/놀림 등 개인적인 편견행위 → 고용 교육 등의 영역에서 차별 → 혐오범죄 → 제노사이드
어쨌든 기본적인 편견이 기피, 차별, 물리적 폭력, 제노사이드로 이어진다는 가능성. 혐오표현-차별행위-증오범죄의 연쇄 구조. 이 가능성은 이미 여러 번 학자들이 입증한 바 있다. 동일한 배경이라는 걸 보여준다.
- 차이점: 증오범죄는 기존의 범죄론에서 양형요소, 가중처벌 요소로 고려됨. 기존 범죄를 가중처벌. 반대로 혐오표현은 새로운 범죄유형(혹은 차별유형)이고 새 입법 필요.

여성혐오의 특수성
- '여성' 혐오표현과 '여성' 증오범죄를 다른 경우와 비교하면
1) 일반적인 혐오표현은 소수자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형태로 드러남. 또는 사회적 지위, 같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함. 이주노동자는 너네 나라에 가라, 성소수자는 치료대상이다 등. 하지만 여성혐오는 특이하게 정체성을 부정하기보다는 '일부 여성'의 속성으로 몰아가려고 함.
2) 여성 집단을 분리하려고 한다. 성소수자 혐오자는 다 혐오함. 근데 여성을 혐오하는 사람들은 다 문제인 게 아니라 '일부 여성'만이 문제라고 한다. 집단으로서의 여성 문제를 회피하려고 한다는 차이.
3) 양적 다수성. 여성은 인구 구성으로는 소수자가 아님.
4) 내부의 이질성. 여성을 집단 정체성을 지닌 존재로 보기 어려워함.

- 그러나 이번 사건의 징후는 다른 소수자에 대한 증오범죄 징후와 별로 다르지 않게 나타남. 일반적인 증오범죄의 중요한 표지는 소속 구성원들이 다 자기 일로 느낀다는 것. 피해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성원들 자신의 일로 느낀다.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 등. 흑인 대상 범죄에 흑인 공동체 등에서 보이던 표현. 나도 흑인인데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고 반응한다. 그리고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활성화하고 집단 간 갈등 격화 등이 나타남.
여성들도 이렇게 집단적 정체성이 공고한 소수자 집단에게 나타나는 파급효과와 유사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여성은 이미 소수자로서의 지위는 공고했던 게 아닐까. 여러 사람이 의문을 제기하던, 여성은 여성으로서의 집단적 정체성이 있냐는 의심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증오범죄의 의의
- 간접적 원인: 소수자에 대한 차별, 적대, 어려운 경제상황, 소수자 희생자화
- 직접적 원인: (가해자의) 동료로 승인받고자 하는 질투, 욕망, 적개심 / 피해자 개인에게는 별 감정 없지만 그 소속 집단을 적대 / 심리적, 가정적, 사회적 요인
- 해악
1) 평등이념 파괴. 증오범죄가 중요한 이유는, 이들 집단을 두고 기본적으로 평등한 사회 구성원이 아니라고 선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정한 집단을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느냐 하는 부분.
2) 피해자들에게도 막대한 심리적 상처를 남긴다. 그냥 개인적으로 폭행을 당한 것과 자기가 소수자라서 폭행을 당한 건 심리적 피해의 정도가 다르게 나타남.
3) 소속 집단 전체에 공포심을 야기한다. 우연히 살아남았을 뿐이라고.
4) 사회 안정과 공공질서에 대한 불안을 집단적으로 야기한다. 집단 간 긴장을 유발하며 더 많은 불안을 낳음. 사회 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측면. 여성만 그런 건 아님.
5) 잔혹하다. 편견에 기초한 범죄다보니 일반적으로 잔혹하게 나타남.
6) 일베 같은 집단이 그렇다고 볼 수 있는데, 가해 집단이 있는 경우가 많다. 흑인 증오범죄 보면 흑인 차별 집단이 있다. 그래서 추가적인 범죄로 이어질 위험 있음. 그리고 범죄 저지른 사람이 영웅시된다거나, 또다른 영웅을 만들고/되고 싶어하는 모습.

증오범죄 판단 방법
- '편견' 때문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방법. 증오범죄 판단을 위해 심리분석도 하고 프로파일링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범죄 전후의 정황이다. 범죄 자체의 속성. 대상을 타겟팅한다든가. 가해자가 선언문 작성하는 경우. 주변인에게 평소에 어떤 말을 했는가. 사후에 자기 행위를 뭐라고 평하는가. 어느 집단에 소속되어 있느냐. 어느 사이트를 다녔는가. 증오범죄 규정을 가지고 있는 나라들은 이런 식으로 무엇으로 증오범죄를 규정하느냐가 구체적으로 기술이 되어 있다.
- 지금 전문가들 혐오범죄 아니라고 하는데 너무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모르는 상태에서는 단언할 수 없다. 경찰 발표도 성급했다. 가해자의 정신감정을 한 것도 아니고, 범죄 수사가 그렇게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질 수 없는 건데. 이런 것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혐오와 상관이 없다고 단언해버렸다. 
- 성급하다고 생각한 이유 두번째. 경찰은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어서 단언을 한 건가. 알 수 없음. 그 기준이 검증되고 합의된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증오범죄 여부를 확인해줄 수 없다고 한다면 거기까진 이해하겠는데, 우리나라에 '증오범죄 없었다'고 단언하는 건 좀.

증오범죄법 제정
- 그럼 다른 나라에서는 왜 증오범죄 법을 만들고 있는가.
1) 실천적 의의: 사회적 인식 제고. 수사기관이나 법원 등에 이 문제에 경각심, 인식 개선과 실무능력 제고. 관련해서 범죄 통계로 잡을 수 있게 되고, 국가 공식 통계로 잡아서 조사하고 보고한다. 그렇게 우리 사회의 차별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보여준다. 증오범죄의 가시성 고취.
2) 이론적 의의: 행위가 비난 가능성이 더 크고. 피해자가 속한 공동체에 해악을 초래하기 때문에 피해도 크다. 그래서 가중처벌해야 한다는 주장.
3) 국제법적 근거: 인종차별철폐협약 4조(인종차별적 폭력 금지)

증오범죄법 쟁점사항
1) 특정 소수자 대상 범죄만 따로 떼어내는 게 형평성에 어긋날 수 있음. 특정한 집단 대상의 범죄만 가중처벌하는 게 차별이 될 수 있다. 가해자도 소수집단에 속한 경우 등.
2) 실효성 측면.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느냐 하면 그건 의문. 새로운 범죄를 만들어내는 건 아니니까. 가해자 입장에서는 법이 따로 있다고 해서 주저할 요소가 없음. 그냥 약간 가중될 뿐. 가해자가 범행 전에 위축될 거라 기대하기 어려움. 경찰 조사도 마찬가지. 증오범죄라고 더 열심히 수사하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
3) 법치국가 원칙과 충돌 우려. 법치국가에 대한 환상. 범죄자의 심정을 기준으로 처벌하는 게 옳은가. 그리고 동기를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것의 어려움.
4) 증오범죄를 처벌한다는 명목으로 감시국가, 예방국가가 될 우려. 결국 경찰의 예방 등을 강화함으로써 감시사회를 만들 거라는 비판. 압수수색, 도청, 감청, 시민과 '적'의 분리. 우리 경찰은 이론에 나온 걸 전부 다 하고 있죠. 씨씨티비 확충 등의 경찰 예방 활동.
- 따라서 증오범죄 법에 대한 환상은 곤란하다. 그리고 문제점도 우려.

결론
- 증오범죄 법은 하나의 상징적 의미. 상징은 나쁘지 않음. 의지를 갖고 그 상징으로 추진하는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 실질적 범죄 예방 효과보다는 국가/공동체의 의지를 보여준다는 점. 가시화. 의제화.
일단 정치지도자가 나서서 안심을 시켜 줘야 돼요. 여성혐오 맥락이 아예 없는 게 아니라는 정도만이라도 인정한다든가. 가만히 있지 않고 노력하겠다고 한다든가. 그런데 대통령은커녕 여성가족부조차도 안 함. '여성혐오 범죄는 아닌 것 같다' 이 정도만으로 접근한다는 게. 코멘트가 립서비스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거기서 출발하는 거거든요. 그렇게 의지가 없는 상태에서 증오범죄'법'만 만든다는 건 너무 부차적인 문제에요.
- 여성혐오 범죄냐 아니냐에는 이런 점도. 혐오에 기반한 게 주된 동기라는 게 확실해야 함. 범죄자 가중처벌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치국가 원칙들이 적용되기 때문.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에 유리하게 해야 한다든가 등등. 그래서 형사법적 관점에서 "증오범죄"라고 할 수 없다는 건 이해함.
그런데 언어가, 꼭 법의 언어로 말해야 하는 건 아니거든요. 게다가 우린 법도 없어요. "여성혐오 범죄"를 규정하는 게 그렇게 어렵다면, "여성혐오'적' 범죄" (일동 웃음), "여성혐오라는 맥락을 따로 떼어놓고 볼 수 없는 범죄"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여성혐오 범죄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락이 있다"든가. 이런 건 얼마든지 충돌하지 않고 가능하다. 전략적인 차원에서 사회적인 담론으로 말하는 건 가능하지 않은가. 
범죄학적 측면에서 "증오범죄" 아닐 수 있어도, 범죄 발생 후의 사회적 반응과 그 맥락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여전함. 오히려 사회적 반응은 증오범죄와 매우 유사했다는 점. 그러므로 경찰이 증오범죄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과, 이 사건의 증오범죄적 측면에 주목하는 입장은 양립 가능하다. 그리고 전략적으로 "증오범죄다"라고 말하며 사회적 담론을 구성하는 것도 가능.
혐오'적'표현, 증오'적'범죄 등 차별과 폭력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치안대책 등은 불충분. 치안대책이나 정신질환자에 관한 대책만으로 문제해결의 방향을 제한하려는 데 맞서야 함.
- 그런 점에서 봤을 때 굳이 법적인 대응을 한다면, 증오범죄법보다는 차별금지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 증오범죄법은 앞서 말한 대로 문제도 있고, 제한적인 의미만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의 가장 근간을 이루는 건 차별이므로. 차별을 규제하는 것이 가장 필요하고 우선해야 할 것이 아닐지.

* 19대 국회 법안 제출 현황

- 차별금지법안: 차별금지법안(최원식의원 등 12인, 2013.2.20., 철회), 차별금지법안(김한길의원 등 51인, 2013.2.12, 철회), 차별금지법안(김재연의원 등 10인, 2012.11.06.)
- 혐오표현금지법: 형법 일부개정법률안 (안효대의원 대표발의, 2013.6.20.) “인종 및 출생지역 등을 이유로 공연히 사람을 혐오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 증오범죄가중처벌법: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이종걸의원 대표발의, 2013.11.29.) “출신 지역, 출신 국가, 인종,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등을 이유로 한 개인적·사회적 편견에 의하여 생성된 혐오감을 표현하기 위한 목적으로” 살인, 상해, 폭행, 재물손괴, 명예훼손, 모욕죄를 범한 경우 가중처벌.


4. 이미경: 화장실법 개정이 아니라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우리 여성들은 '두려움'을 넘어 '연대'하며 힘을 낼 것.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저는 홍성수 교수님의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받아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여성혐오 범죄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연대하겠다는 말씀을.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닌
- 강남역 추모의 글에서 이런 글을 봤어요.
"여자로 사는 것이 두렵고 겁이 났습니다. 아무행동도 하지 않고 있었을 때는요. 하지만 이 곳에서 공감하고 연대하는 것을 보고 희망을 가져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도 설치고 떠들겠습니다. 당신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더 이상 약자이지 않도록. 여자라서 자랑스럽습니다."
- 특별한 일이 아님. 저도 늘상 봐왔고요. 특정 사건이라는 비커 안에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우리 일상 안에 있는 것.
어제 외국에서 온 분을 만났는데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한국은 OECD 가입국이고 여성대통령이 있고 '4대악'이 있고 케이팝과 한류가 '반짝반짝'하는데. 어떻게, 여성혐오라니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근데 실제 소수자들은 일상적으로 혐오 폭력 차별 경험한다.
- 전국 성폭력상담소 전국 150여개. 연간 상담 9만여 건. 모두 여성혐오 차별 폭력 등 여성 인권침해 사건.
- 이렇게 피해자를 차별하고 비난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말을 하고 피해를 호소하고 신고하고 고소하고 치유의 여정에 선다. 분투하며 살아내고 있구나 하고 감동.
-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 학자들. 정치 언론 종교 분들. 많이 노력하셔서 우리 사회가 변화해오고 있다는 건 사실이다. 저는 그동안 어떤 사건들이 있었고 어떻게 대응해왔는지를 잠깐.

그동안 우리 사회는
1) 1955년. 70여 명의 여성을 혼인빙자 간음한 것으로 고소된 사람. 박인수 사건. 법정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결혼 약속한 적 없어요. 다 자기가 대줬죠. 그리고 한 명만 처녀였습니다. 자기가 무슨 처녀 감별사라고... 1심에선 법원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을 보호한다며 무죄. 2심에서는 징역 1년.
2) 1988년. 성추행 피해 순간에 가해자 혀를 깨물어 절단시킨 사람. 과잉방어로 고소됨. 1심에서 유죄, 2, 3심에서 결국 무죄 받음. 여성단체 공동대응. 그런데 심문 중 검사는 피해자가 진술하는데 가해 이야기 순서가 왜 틀리냐고 호통을 치고. 가해자 변호인은 피해자가 부도덕하다고 몰아세우고. 언론의 매도. 피해자 말하길, 차라리 그때 죽었더라면 이 수모는 안 당했을 텐데, 라고. 당시 형법 제32장 제목은 "정조에 관한 죄"였다. 이 내용은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짐.
3) 1991년.  자기를 21년간 강간한 이웃집 아저씨를 살해한 사건. 그땐 성폭행이 친고죄라서 자기가 6개월 이내에 고소해야 했음. 피해자 말하길, "나는 사람을 죽인 게 아니라 짐승을 죽였습니다." 당시에도 지역 여성단체가 모여 공동대응. 살인이었는데 집행유예 받았다. 성폭력특별법 제정운동의 직접적 계기.
4) 1992년. 자기를 13년간 성폭력한 의붓아버지를 남자친구와 함께 살해한 사건. 당시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은 고소하지 못했다. 이때도 여성단체 공동대응했는데 더 잘 대처했다. 전국 대학생 대책위도 구성. 22명 무료 변호인단. 그럼에도 무죄는 못 받음. 남학생은 징역 5년 여학생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역시 성폭력특별법 제정운동의 직접적인 계기.
5) 2003년. 생존자 말하기 대회. 우리 사회에서 피해자들에게 입다물라고, 네가 피해를 말하면 그 자체가 너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야, 라고 말하는 것에. "세상에 들어라 나는 말한다"고 성폭력 말하기 대회 시작. 참여자들이 대중 앞에서 자기 경험을 말하고, 듣는 사람들은 응원과 지지를 보내는 것이었다. 매우 조심해서 진행했었음. 정말 많은 분이 자기 피해를 이야기하고 계셨다.
6) 2004년. 유영철. 21명을 성폭행하고 살해해서 암매장했던. 왜 죽였습니까 물으니 "여자들이 몸을 함부로 굴려서"라고 답변. 유영철이 이런 말 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문제는, 사회가 유영철이라는 사람을 빌어서 "밤길 조심해, 우리는 보호할 가치가 있는 여자만 보호할 거야" 이런 메세지를 보낸 게 더 큰 문제다. 그래서 밤길 걷기 운동 시작. 내가 달빛을 받으며 걸을 수 있도록 국가는 나의 안전을 보장하라 하는 시위. 2010년까지 매년 여름 6년 간 했다.
7) 2006년 용산초등생 성폭력사. 2008년 조두순 사건. 2010년 김길태 사건.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성폭력. 정부가 나서서 엄벌주의를 가속화. 신상공개 강화. 전자발찌. 화학적 거세. 19대 국회에서는 물리적 거세 법안도 나왔음.
여성단체에서는 엄벌주의에 대한 굉장한 우려. 성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우리 사회 구조는 그대로 둔 채, 가해자를 괴물로 만들어서 사회에서 격리하면 그걸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냐. 처벌을 강화하기보다는 처벌의 확실성을 높이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담당자들의 감수성도 높이고 전문성도 높여라. 이런 문제제기.
8) 2011년 - 현재. 27세 나이차 나는 여중생을 연예기획사 대표가 성폭행해서 임신 출산 시킴. 1심 12년형, 2심 9년형 등. 그런데 대법원은 이게 사랑이라고 판단해서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심리 중에 여중생에게 매일 면회오라고 하고 매일 편지 쓰게 시킴. 얘도 시키는 대로 편지에 하트 붙이고 하나뿐인 내사랑 등의 문구 넣음. 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하고 고등법원은 무죄 선고. 다시 대법원으로 재상고. 현재 340개 여성/사회단체가 공동대책위 결성해서 서명운동, 의견서 전달, 모의법정 등 진행 중.

두 사건으로 보는 변화
1) 1997년. 성폭력 피해 입은 여대생이 자살했다. 뉴스는 "수치스러운 삶 대신 죽음을 택한 이 양의 선택은 정조관념이 희박해진 요즘 세태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라고 보도. 장난하냐.
- 피씨통신에서 400여명이 집단 반발. 여기서 특이했던 말. "지금은 언론이 30~4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나 노년층에게는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을지 몰라도 10-20대 젊은 층에게는 제2의 언론이 있습니다. 그것은 컴퓨터 통신이죠."
여성단체 항의 공문. 수치심을 느껴야 할 사람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이다. 대학 학생회 성명서. 성폭력 피해자들이 정조관념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자살을 해야 한다? 등등.
- 방송사 측 사과방송 나옴. "피해자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그 죽음의 의미를 절박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였는데... 본의 아니게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됐습니다."

2) 2016년 5월 현재. 강남역 10번 출구 '여성 살해 사건'.
- 2016년 5월 17일 새벽 1시, 강남역 근처 한 건물 화장실에서 여성을 노려 살해. 가해자는 "여자들이 나를 무시했다"고.
- 한 시민의 제안으로 추모가 연이음. 강남역 10번출구 페이스북 페이지 개설. 피해자 추모 운동 시작. 수백 명의 자발적인 참여로 헌화, 추모의 글. 강남역만이 아니라 각 지역에 등장.
- 경찰은 여성혐오범죄 아니라 '조현병 환자의 묻지마 범죄'라고 발표. 경찰청장 기자간담회에서는 정신질환자 체크리스트, 행정입원, 취약지역 순찰 강화 등을 발표. 그러나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는 '살인원인을 조현병으로 단정지을 수 없다'는 반박성명. 국회에서는 공중화장실 법 개선하겠다며 새누리당에서 개정안 발의 예정. 공중화장실 남녀 의무 분리하겠다고.
- 뉴스는 범행 당시 장면을 반복 보도해서 국민의 공포와 분노 조장. 여성차별 강화하는 보도. 사건의 본질 흐림. 조현병 환자와 강력범죄의 문제라고 하면서 편견 심화. 대안은 부재. 근본적인 진단 및 비판과 대안 보도 부재.
- 온라인. 추모 참여자의 신상 노출해서 협박. 정신적 물리적 위협.
- 여성단체 공동대응 기자회견. 긴급집담회 "대한민국 젠더폭력의 현주소". 강력 대응하겠다.

3) 차이점
- 과거에는 여성단체 중심으로 움직였음. 이번엔 개인들이 바로 반응. 자발적으로 실천, 참여.
- 여성살인이 여성폭력 문제로 확대되면서 공감대가 확산되고 본인의 경험 말하기. 일상에서도, 거리에서도 말할 수 있는 문제로 변했다. 그만큼 여성들이 용기를 내고 힘을 낼 수 있게 됐다고.
- 반작용으로 엄청난 여성혐오 표출. 추모자들에 대한 지속적인 공격.

함께 논의하고 싶은 것
1) 공중화장실법 개정이 대안입니까?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등 차별과 혐오를 규제하는 대응을 해야. 그리고 그런 식으로 인간 이하 취급하는 문화를 그만둬야.
2) 정신질환자의 문제입니까? 오히려 편견을 조장하고 있다.
3) 여성 대 남성의 구도로 가져가는 게 옳은가? 이보다는 실천적 대안으로.
4) 여성은 연약한 피해자인가? 오빠들의 보호를 받아야만 하는 존재인가. 집에 데려다준다고 같이 탄 택시 안에서 문제 발생했던 사건. 혼자 가는 게 훨씬 낫습니다! (일동 웃음). 연대하면서 힘을 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5. 송란희: 여성운동 현장에서 본 여성폭력 살해 실태와 운동.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

저희는 작년부터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라는 캠페인을. 카피 칭찬을 많이 들었어요. 듣는 사람마다 쓰는 사람마다 해석이 다양한데 오늘도 여러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성폭력이 중심 활동인 단체에서 일하다보니. 여성폭력 매우 뻔하고 다 해결된 것처럼 이야기를 하게 돼요. 그런데 그 사이에 무수한 여성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것. 그리고 피해 여성에 대한 비난이 있다는 것. 그걸 뼈아프게 반성하게 됐다.
오늘은 여성폭력이 무엇인가부터 이야기.

여성폭력을 정의하는 문제
- 여성폭력 철폐선언(1993)에서 정의하는 여성폭력. "공사 모든 영역에서 여성에게 신체적, 성적 또는 심리적 손상이나 괴로움을 주거나 줄 수 있는, 성별에 기반한 폭력행위, 그리고 그러한 행위를 하겠다는 협박, 강제, 임의적인 자유박탈". 가족 내 폭력, 일반사회에서의 폭력, 국가에 의한 폭력으로 구분.
- 한국에서는 여성폭력이 뭐라고 공식적으로 정의한 적이 한번도 없고요. 가정폭력 성폭력 아동폭력 등으로 분절하면서 흩어짐. 그렇다고 그 각각이 뚜렷하게 정의되는 것도 아니고. 여성폭력은 누구나 알지만 우리 사회는 이걸 한번도 공적으로 합의한 적이 없습니다.

여성폭력 실태
- 2012년. 성폭력피해생존자 말하기. "우리는 생존 외에 다른 꿈을 꿀 수 있는 세상을 원한다".
- 폭력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에서 기인하는 게 너무 명확하다. 한국은 성평등 지수 154개국 중 115위. 그만큼 심각하다는 의미.
- 국가가 이걸 제대로 알고 있느냐. 당연히 아무도 추측할 수 없다. 실태조사 없다.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등 유형에 따라 3년에 한번 조사가 있음. 여성폭력을 아우르는 실태조사는 없다. 제가 국가 통계에 왜 집착하냐면, 실태를 알아야 대책을 세울 수 있잖아요? 근데 그게 없고요.
- 범죄 통계는 범주에 성별적 특성이 없음. 어떤 성별이 어떤 상황에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다. 성폭력, 가정폭력 피해를 얘기하면 (여성의 피해가 얼마나 뚜렷한지 나오지 않으므로) '남성 피해자자도 있잖아' 하는 반박을 받고. 그래서 성별 문제가 많이 희석된다. 저는 국가가 (조사하지 않음으로써) 이걸 의도해왔다고 생각하고요.
있는 통계는 단순히 피해자가 여성 몇 명이다 남성 몇 명이다 뿐. 범죄자와 피해자의 관계, 가해자의 특성, 범죄 발생 상황, 처리 결과 등 어떤 관계에서 어떤 특징으로 입는 피해인지는 알 수 없다. 최근 통계가 없어서 그냥 예전 통계를 쓰는데, 2004년 청주여자교도소 수감자 조사가 있다. 전체 수형자 531명 중 133명(30.5%)이자 살인죄 절반이 남편 살해로 수감. 이들 중 82.9%가 남편에게 굉장히 심각한 폭력에 지속적으로 시달렸다. 그러나 남편 살해 사건에서 아내의 피해 얘기가 아무리 나와도 법원에서는 한번도 정당방위가 인정된 적은 없다.
- 여성 살해에 대한 공식 통계가 없다. 국가에 문의했더니 없다는 답만 돌아옴. 그래서 한국여성의전화는 신문에 나온 사건 수를 세기 시작했다. 7년간 세봤더니 상당히 쌓였다. 2015년까지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던 사람에게 살해당한 여성은 657명, 미수 포함 1051명. 2.4일에 한 명이 살해되거나 살인미수를 겪는다. 신문에 보도된 것들만이니까 당연히 최소치인데.
진짜 같잖은 이유들로 수많은 여성들이 살해되고 있다. 헤어지자고 해서, 다른 남자를 만나서/의심해서, 싸우다가 우발적으로, 생활고 때문에, 식사 차리는 시간이 길어져서, 술 취한 모습에 화가 나서, 강낭콩 껍질을 벗겨서, 양말과 운동화를 세탁하지 않아서, 전화 받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홧김에, 술에 취해 등등. 이 여자들이 그동안 왜 죽었는지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다. 아 그런 점에서는 정말 묻지마 살해였구나.
- 지금도 이렇다. 너무 많고 자연스러워서 이야기조차 못했던 것 아닐까? 너무 공기처럼 당연하고 만연해서? 이번 강남역 사건은 그렇게 쌓여온 게 표출된 거라고 생각.
- 강남역 추모자 인권침해 상황. 지금 하루만에 30명 정도 접수됐다. 자기 사진에 천개 정도 댓글 받아본 분이 계신지 모르겠는데. 정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잘근잘근 씹었더라. "나는 운 좋게 살아남았다"고 하면, "이게 무슨 뜻이니. 그럼 죽고 싶다는 거냐. 죽여줄까 ㅇㅇ년아?"
피해자 분, 너무 괴롭고 힘들지만 끝까지 참여하겠다고. 왜냐하면 내가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가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하셨다.

여성폭력과 성적 불평등의 악순환
- 여성에 대한 폭력은 성적인 불평등에 기인하지만, 다시 성적 불평등을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묻지마 범죄, 화장실 범죄, 정신질환자 문제, 이성혐오, 이렇게 규정하고 이런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릴 뿐더러 왜곡하고 축소한다. 가해자 처벌/격리 조치는 일차원적이고 단기간일 뿐. 우리 사회의 여성 혐오와 차별을 해결해야지.
- 여성에 대한 폭력과 성적 불평등의 악순환은 강력한 사회적 개입으로 개선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제도일 수도 있고 운동일 수도 있음. 둘이 합쳐져야 강력한 개입이 될 거라고 본다.
강남역에 붙은 수많은 포스트잇 중에서 무서우니까 씨씨티비 늘려달라는 글은 하나도 본 적 없어요. 화장실이 나쁘다는 글도 못 봤고요. 그런데 경찰과 정부에서는 하드웨어적인 측면만 발표를 해요. 정작 사람들이 느끼는 건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인데. 이건 어떻게 해도 할 수가 없다는 무력감의 표현이고, 결국 구조적인 문제라는 지적.
- 대책. 다 아는 얘기라도 다시금 얘기하고자 한다.
1) 여성폭력을 포괄하는 법으로. 성폭력 가정폭력 등등 따로따로 다루는 특별법 말고. 여성비하, 여성혐오 등은 지금까지 제재가 없다. 여성에 대한 광의의 차별을 다루는 규제. 국가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신을 밝히고 의무를 다하는 기본법이 필요한 거 아닌가. 심각한 상태이고 더 묵인하지 않겠다고.
2) 성폭력을 총괄하는 기구가 여성가족부에 있었는데 없어짐. 그리고 여성가족부는 성평등을 위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지 오래다. 그럼 모든 부처가 협력해야 하는데 지금 그걸 누가 조율하냐. 그죠. 
3) 여성안심귀가, 씨씨티비 같은 게 문제가 아니라. 사회에서 이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가 확산되길. 명명하고 가시화.

6. 정미례: 착취와 폭력의 현장에서 '살고 싶다'는 여성들의 소박함에 대하여
성매매 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공동대표

주최측의 농간으로 갑자기 이 자리에 왔다. 하고 싶은 말도 너무 많고. 근데 10분 안에 끝내라는데. 제가 5분 안에 끝내보이겠습니다.

착취와 폭력의 배경
- 착취와 폭력의 현장에서 "살고 싶다"는 소박한 내용.
- 역사성을 따지고 보니까 실제로 혐오범죄 타겟은 이미 정해져 있었더라고요. 권력관계, 불평등에서 발생하는 것이므로. 예전부터 성매매 여성은 이미 타겟이었음. 이들을 단죄하는 의미로. 이들이 사라져도 아무도 찾지 않는다는 현실적인 측면도. 그래서 성매매 여성 살해가 오래 지속되어도 아무도 신고하지 않고 찾으러 나서지도 않고. 그래서 범행이 연쇄살인으로 이어지는 형태가 많았다. 역사적으로도 많이 밝혀져 있다.
- 왜 여성인가에 주목. 우리가 많이 분노했던 이유. 실제 여성 대상 범죄가 있을 땐 혐오가 작동한다. 그런데 우리가 기득권에 대해 말할 땐 혐오라는 말을 안 써요. 백인혐오 이런 말 안 쓰잖아요. 명명의 정치. 그리고 이걸 놀이처럼 만드는 현실. 여기에 문제제기해야 한다. 묻지마 범죄라고 하는데 그 말도 참. 실제 묻지마 범죄도 아니고 여성을 타겟으로 하는데. 피해자는 사라지고 가해자만 남고, 그래서 가해자의 말만 유통되고 있다. 가해자는 형량을 줄이기 위해 심신미약 등을 주장하고 모든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려고 하기 때문에 저는 가해자의 말은 신뢰하지 않는다. 따라서 가해자의 말보다는 사회의 젠더폭력을 다시 봐야 한다.
- (개인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건) 결국 우리를 침묵시킨다. 우리 여성은 침묵하지 않고 말하고 나서는데, 그 여성을 다시 타겟으로 삼는다. 정상/비정상, 보호대상/보호대상 밖, 정숙함/정숙하지 못함을 나누고. 후자를 타겟으로 삼고. 그리고 이 속성을 부여함으로써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다.
- 이는 사회 구조적인 것이고 시스템 안에 정착되어 있고 고착화되어 있기 때문에 여성만으로는 이를 해결할 수 없다.
- 신자유주의. 소비대상이 되는 것.
성매매와 연결해본다면.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취약한 위치의 사람이 젠더권력의 피해를 입고 있음에도. 마치 (포주와 성매매 여성이) 공평하고 평등한 것처럼 가정한다. 비대칭적 구조를 무시하고 그게 없는 것처럼 말하는 데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살고 싶다는 소박함
- "살고 싶다"는 말은 자살한 성매매 여성의 유서에서 발췌. 그러나 살고 싶다는 건 그저 개인의 소망일 뿐. 실제로는 살 수 없다. 생존해도 사회적 살인을 겪는다. 살 수가 없는 거죠.
- 여성에게 행해지는 폭력에 주목했으면.

최근 사례 소개
- 언론에 보도되는 건 빙산의 일각이다. 지금도 여성들 초상을 치르고 있다. 보도된 일부 외의 나머지는 대부분 자살의 형태로 다뤄진다. 최근에는 해외에서 살해당하는 일들도. 우리는 그저 보도되는 일부만 안다. 거의 보도되지 않음. 그래서 잘 모르고 넘어가게 된다. 여기 소개한 건 아주 극악한 형태로 선정적으로 보도된 것들임.

1) 여수유흥업소 여성사망사건. 20대 여성이 업주로부터 상습적인 폭력 폭행 성매매 강요 등을 받아오다 결국 사망한 사건.
- 언론의 보도 태도. 불쌍하다, 안 됐다 말고는 전부 가해자의 입을 빌려 나오고 있다. 가해자의 말은 당연히 낙인과 편견과 혐오에 잠겨 있음. 그래서 피해자에게 '너는 (동등한) 사람이 아니다, 그래야지 살 수 있다'는 메세지. 
- 여성들은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고 느낀다. 다른 죽은 여성들 보면서 나도 업주의 폭행 협박 당하고 그랬지만 우연히 살았다고 느낀다. 강남에 달리던 메세지와 똑같다. 당사자들 이 사건 보면서 많이 우셨고요.

2) 만 13세 청소녀 성착취피해자. 성인 남성 6명에게 지속적으로 성폭력 성착취 피해를 입었음에도.
- 미성년 여성이고, 대부분 성인 남성이 구매. 상대 여성이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면서도 마치 자기가 사회사업가인 것처럼 내가 잠자리를 제공해줄게 하고. 주변 사람들조차도 거기에 동조하고 함께 범죄 저지름. 이런 거 보면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라 모두가 공범입니다. 단지 기회가 안 주어졌을 뿐이에요. 눈치를 보고 있다가 기회가 생기면 가는 거죠.

- 피해 여성이 안전할 수 있는. 그리고 안전하게 말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 당사자들이 이걸 통해 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들어야 합니다. 국회 토론 보면서 반성했다. 아 더 늦게 가더라도 천천히 진행되더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고 그리고 이걸 듣도록 해야겠다고 생각, 반성.
- 내일 달릴 댓글 걱정하며 이런 얘기를. 제가 처음 여성운동하면서 받았던 혐오는, 여성운동하는 애들은 못생기고 키작고 뚱뚱하다는 소리였다. 근데 제가 다 해당되더라고요. 내가 이런 소릴 들으면서 계속 해야 하나. (그렇게 나는 극복했는데) 그러나 이게 개인적인 각성을 떠나서 사회 전체의. 우리 모두가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연대했으면 좋겠습니다.

7. 최지은: ㅇㅇ녀는 어떻게 탄생하고 죽어가는가 - 한국 언론의 젠더의식 부재
웹진 <아이즈> 선임기자

저는 앞에 말씀하신 분들처럼 학술적인 연구를 하거나 현장에서 활동한 사람은 아니에요. 오히려 여기 앉아계신 다른 분들과 비슷한 사람이고 비슷한 이야기를 하러 나왔다고 생각. 제가 아니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 한국의 젠더의식에 대해 많은 여성들이 비판과 항의를 해왔는데, 그게 계속 축소되거나 묵살되는 걸 보면서. 혹시 언론계 내부에서는 정말 모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했고. 그래서 공적인 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언론이 만드는 ㅇㅇ녀
- 지난 주 토요일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추모 집회. 그 현장에서 언론중재위원회에 성평등기준 시정권고 심의기준 제정을 요구하는 서명운동 있었다. 왜 그 자리에서 그 서명을 해야 했는가. 최근 언론에서 이런 단어 많이 보셨을 거예요. 대장내시경녀, 트럼프녀, 나영이 사건. 이건 전부 남성 가해자가 여성 피해자를 낳은 사건. 그런데 언론에서는 여성 피해자를 부각시키며 자극적으로 다뤘다. 그러면서 ㅇㅇ녀에 대한 여성들의 분노가 점점 임계점에 달한 게 아닌가. 서명에는 온/오프라인에서 현재 천이백명 참여했다.
- 여성이 가해자일 때도 ㅇㅇ녀 하는데, 피해자일 때도 당연하게 ㅇㅇ녀. 된장녀. 김치녀. 성폭행피해녀. 이제 법적 대응을 하면 신고녀, 고소녀. 그러나 남성의 성별은 헤드라인에서도 본문에서도 표기가 안 된다. 글자 수 문제로 줄인다고 하는데, 몇 글자 차이 안 나는 피해자도, 피해여성도 아니고, 그냥 ㅇㅇ녀. 남성은 가해남이라고 하지 않는데. 어떤 분들은 가해자 성별표기 운동 이야기하기도 했다.
- 그런데 이건 기사에서 남성을 인간의 기본값으로 두고 여성만 성별 표시를 하는 것. 차별적이기도 하지만. 그에 더해 자극적인 헤드라인마다 가해자 성별 지우고 여성만을 보도하며 여성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심어준다는 생각. 강력사건 같은 경우엔 범죄, 사치, 치정, 이런 데 여성이 부각되니까 여성이 꼭 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누가 저질러서 누가 상처를 입었는지가 아니라 여성이 마치 갈등의 필수요소처럼 다뤄진다. 여자가 끼면 안 좋은 일이 있다고 느끼는 것처럼 보여요. 
- 그런데 반면 가해자의 변명은 헤드라인으로. 그리고 가해자에게 동정적으로, 감정이입. 성폭력 관련해서도 매우 충격적인 헤드라인들 많았다. 가해자가 한 말을 헤드라인에 그대로 쓰고. 안타까워하고.
- 범행 당시의 상황을 사진이나 그림으로 전면에 보여주면서 관음증적인 소비를 하도록. 자극적인 제목. 이렇게 여성이 저항하지 못하거나 수동적으로 당하는 모습을 자극적인 요소로 쓴다. 결국 기사를 보는 사람들이 이걸 포르노로 소비하게 한다. 댓글에서는 감정이입을 가해자에게 하거나, 나도 확 해버리고 싶다, 피해자 품평 등 2차가해 댓글이 많이 달린다. 
- 언론사 SNS나, 온라인 뉴스팀이란 식으로 기자 실명 안 걸고 내는 기사들 늘었다. 어떻게 이런 걸로 농담하나 싶은 상황에 나름 "재치"를 발휘하려 하는 제목들. 몰카에 "은밀하게 위대하게". 뒤에서 성추행한 남성 "섹시백에 반한 성추행남, 에잇 못참겠다".

언론의 2차가해
- 여성은 그냥 이 사회의 동등한 시민이 아니라 기사 안에서 끝없이 타자화되고 대상화되는 풍조. 여성혐오를 확대재생산하고 남성을 자극한다. "말조심해야지, 강남 묻지마 살인에 위축된 남성들".
- 어떻게, 언론사들이 정말 원칙이 없는 걸까. 그런데 한국기자협회 정관에는 인권보도준칙이 있고,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권고 기준, 성폭력 사건보도 가이드라인 등 원칙이나 지침은 이미 있다. "언론은 가해자의 사이코패스 성향, 비정상적인 말과 행동을 지나치게 부각하여 공포심을 조장하고 혐오감을 주는 내용의 보도를 하지 않아야 한다", "가해자의 변명을 그대로 전달하여 피해자에게 수치심을 주지 않아야 한다", "언론은 성범죄의 원인으로 개인의 정신질환이나 억제할 수 없는 성욕 등의 문제만 부각하지 말고 그 근본 원인이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인 사회구조에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언론은 가해자 중심적 성 관념에 입각한 용어 사용이나 피해자와 시민에게 공포감과 불쾌감을 주고 불필요한 성적인 상상을 유발하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 등. 우리가 상식적, 윤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원칙은 다 들어가 있다. 아무도 지키지 않을 뿐이다.
- 언론이 지금 하고 있는 보도 행태는 2차가해라고 볼 수 있다. 개인들이 꾸준히 비판하고 있고, 하지만 개선되지 않기 때문에 결국 오프라인에서 목소리를 내게 되는 경우. 시민들이 직접 움직이기도 했다. 지난 4월 연합뉴스에서 소라넷 운영자에 빙의한 가상 기사 냈을 때. "어쨌건 지금은 떠나지만 우리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등. 가해자에, 범죄자에 왜 그렇게까지 빙의하는지 알 수 없는 기사들. 왜 그토록 많은 피해자들을 낳은 범죄에 이입해야 했는지 알 수 없다. 몇몇 분이 연합뉴스 본사를 방문했고, 그 뒤 연합뉴스 내부에서는 기사 제목에 여성이나 소수자 비하를 피하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 그러나 헤드라인에 안 쓴다고 바로잡히냐 하면 그건 아님. 너무나 새롭게 다채롭게 2차가해 하는 기사들. 연합뉴스에서 바로 다음에 낸 "비혼이 대세? 외국 처녀라야 딱지 떼는 총각에겐 상처"라는 기사. 자세히는 생략하겠다.

'일부 언론'이 아니라

- 정말 놀라운 건. 페이지뷰가 존폐와 직결되는 군소언론만 하는 게 아니라. 주요 일간지와 지상파 3사가 모두 이러고 있다는 점. 한국 언론이 정말 젠더의식이 없고 왜곡된 모습을 퍼뜨리고 있구나. 그러면서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키고 피해자를 만들고 있다. 이에 대한 비판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데, 내부에서는 과연 성찰과 반성의 의지가 있는 것인지.
- 어제. 부산에서 지나가던 여성을 가로수 지지대로 폭행한 사건. 이거 보도를 "또 여성을 상대로 묻지마 폭행"이라고 했다. 아니 근데 "또"라는 말에서 이미 분명히 여성을 상대로 한 선별적 폭행이라는 게 드러나는데, 그 뒤에 굳이 "묻지마" 폭행이라고 쓰는 게. 대체 묻지마 폭행을 무슨 뜻으로 쓰는 것인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쓰고 있구나. 반성이 없구나.
- 언론은 대체 뭘 하고 싶은 건가. 그리고 이런 언론이 과연 사회의 다른 부조리와 병폐에 대해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 지금 언론과 포털이 어떤 답을 내놓을 것인가. 저는 한 여성이자 시민으로서 묻고 싶습니다.


8. 마무리
김금옥
- 여성에게 얼마나 폭력적이고 불안한 사회인가. 국가의 책임. 여성들의 반응. 쭉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생략)

질문 및 코멘트
- 여성혐오 아니다, 성대결하지 말라, 그런 반응들이 공통적으로 나온다. 설명을 해도 못 알아듣는다. 그런데 이런 짓을 계속 해야 하는지.
- 저는 청주 장애인 연합(*부정확) 일원인데, 범죄 원인을 정신질환으로 몰아가는 게 장애인으로써 매우 기분이 나빠요. 지금도 정신장애인은 사회와 격리되고 차별을 겪고 있다. 경찰과 검찰은 지금도 여성의 분노를 장애인에게 향하도록 몰아간다는 생각을 피할 수가 없다. 의식 있는 분들은 여기에 절대로 속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청주에서 정신장애 겪는 여성이 다른 여성 뺨을 때리는 사건이 있었는데, 매우 치료가 필요한 상태였음에도 참작 없이 실형이 선고됐다. 장애인을 필요에 따라서 갖다 쓴다. 편견 말고 지지 부탁드립니다.
- 저는 흔한 한국남자인데요. 며칠 동안 페이스북으로 키보드 배틀을 많이 하면서 깨달은 건데, 저는 여성혐오라는 단어가 틀리지 않다고 믿지만 페미니즘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이게 여성혐오냐고. 난 여자 안 싫어하는데. 어떻게 쉽게 많은 분들에게 가닿을 수 있는 캐치프레이즈가 없을지.
- 저는 강남역 10번출구 페이스북 관리자입니다. 처음에 그 자리에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그 수많은 포스트잇을 보고. 평화적으로, 이야기하자, 공유하자, 였는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누구에게 맞을까봐 사진 찍힐까봐 걱정해야 했다는 게 충격이었다. 오늘 나온 표어대로 살아남음으로써 존재를 증명하는 것. 우리에 관해 계속 말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더 많이 말하고, 더 많이 증명하자. 다음주 수요일 7시쯤 집회를 준비하기 위해 모여보려고 한다. 아직 제대로 된 기획이 나온 건 아니지만. 강남역 10번출구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보시고 많이 참여해주시고 이야기 나누었으면.
- 저는 가락동 살인사건에서 딸을 잃은 엄마입니다. 여기 나온 이유는. 제가 딸에게 너무 해줄 게 없다는 거예요. 이 사회에서. 그 인간은 우발적이라고 하지만, 준비를 너무 철저하게 해왔어요. 등산복에 나이프에 로프에 염산까지. 우발적이라 하면 한번이나 찌르고 도망을 가야지 우발적인 거지. 그 가냘픈 몸에 여기저기 난도질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경찰서에서까지 칼이 나오고. 이런 것들이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게 탄원서밖에 없어서. 탄원서에 서명을 받으려고 나왔습니다. 저도 여자이기 이전에 엄마이니까. 아파서 누워있을 시간도 없고. 제가 딸을 위해 무엇을 해줘야 하는지 아는 것도 없고. 여기 동참하다 보면 딸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싶어 나왔습니다. 도와주세요. 감사합니다.
- 숙명여대 법과대학 재학생입니다. (못 들음;)
- (수없이 죽은 여성들에게 관심을 환기시키는) 운동의 한 방법으로, '여성장'을 치르는 건 어떨까 하는 지인의 제안이 있었어요. 어떤 언어로도 담아낼 수 없는. 기존의 장례 절차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여성장'을 만드는 건 어떨지. / 언어의 문제. 몰카, 슴만튀, 엉만튀. 이런 말들이 불편하다. 제가 오래 전에 당했을 때. 이런 말을 알고 나서 너무 허무했다. 이거 그냥 오락거리, 유희구나. 몰카도 마찬가지로, 무단촬영이나 강제촬영이라고 해야 걸맞지 않나. 예능에 쓰이던 말을 그대로 쓰고, 가해자가 쓰는 말을 언론이 그대로 받아적고. 그러니 몰카 같은 말을 쓸 때는 반드시 '소위 이렇게 칭해지는'이라고 부연하거나 "따옴표"를 치는 등 그대로 쓰길 거부하면서 말을 만들어가면 어떨까.

패널 답변
김수아
- 온라인에서 싸우는 분들 많죠. 예전 피씨통신이 지금 그렇게 됐습니다. 네이버 댓글이 지금 남자가 많잖아요. 힘들어서 안 싸우기 시작했더니 그런 댓글만 남아서 그런 댓글이 뉴스에 나오더라고요. 힘든 거 알아요. 반 농담 식으로 말하는데, 싸우다 보면 알게 되거든요, 저 사람들이 논리로 대응하는 게 아니에요. 무논리에는 무논리로 대응하는 게 방법일지도 몰라요. 그 사람들은 토론이 목표가 아니거든요. 목표는 네 입을 막겠다 입니다. 왜 온라인에서는 마지막에 댓글 다는 사람이 이기는 거라고 하잖아요. 무슨 말을 해서라도 말이 막히지 말아야 합니다. (박수) 이게 정말이에요. 저는 피씨통신 때부터 느꼈습니다. 제가 언론을 말씀드렸잖아요. 지금 언론이 당황하고 사람들이 당황하는 이유는 하나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피해자는 말을 못했잖아요. 죽었거나 힘들어서. 그래서 편하게 가해자 말만 담으면 됐잖아요. 근데 이제 말하기 시작했으니까. 가해자 말만 담다가 피해자 말도 담아야 하게 된 거죠. 언론이 왔다갔다 하는 걸 보면 그게 보여요. 가이드라인 생기기 이전 이후를 비교해 보면 성폭력에 대한 보도가 줄었어요. 성폭력이 줄었느냐, 아뇨 성폭력 사건은 늘었어요. 이걸 뭐라고 해석해야 할까요. 지침을 지키느니 그냥 보도를 안 하겠다? 언론의 관행이 너무 공고하고. 그래요. 우리가 침묵하는 게 자꾸 그걸 도와주는 식으로 작용해요. 힘들어서 그러시는 거 아는데 정말 도와주는 게 되더라고요.
- (여성혐오 말고 다른 말 없냐는 말씀을 하셨는데) 여성혐오라는 말도 그냥 쓰면 돼요. 우리가 언어를 배울 때 이해를 다 해서 동의해서 쓰는 거 아니잖아요. 그냥 그렇게 쓰면 그렇게 배우잖아요. 그냥 그대로 쓰는 건데. 언어를 고민하는 게 그렇게 중요한(어려운) 문제일지. 오히려 우리 사회의 미소지니가 정말 심했구나, 지금 이걸 언어로 잡아낼 수 없을 만큼 모르고 있었구나 하는 증거. 그리고 왜 여성혐오냐고 하는 분들 중에는 그냥 자기 말을 하고 싶어서 물어보는 분들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이 여성혐오라는 말을 그대로 가져가는 게 맞다고 봅니다.

이나영
- 여성혐오라는 말로 공격당하는 분들 많잖아요. 20년간 공격 받아왔습니다. 그리고 살아남았어요. (일동 박수)
- 남자 기자가 자꾸 강남역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어떻게 봐야 하나요 라고 묻더라고요. 니 눈엔 그게 갈등으로 보이니. 그냥 자기 경험을 평화롭게 이야기하겠다는데, 근데 목숨을 걸고. 여기(추모)에 대고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면서 협박하는 걔네가 문제인데 왜 이걸 "갈등"으로 보느냐. 폭력의 현장이 그 사람들한테는 갈등으로 보이는 거예요. 아니 그리고 피해자가 왜 설득을 해야 하냐. 피해자가 자기가 왜 피해 당했는지 설득해야 하냐. 제가요 이러이러해서요 그래서 오빠가 때렸고요. 왜 우리한테 설득을 요구하세요. 그건 가해자의 역할이고 특권층의 역할이다. 그들이 스스로 자기를 들여다보고 성찰해야 합니다.
- 오늘 다른 기자가 전화해서. 여성혐오가 두드러지는 현장에 가려면 어디 가야 하나요, 라고. 네가 오늘 아침부터 지금까지 여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이해하는지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그게 다 여성혐오다. 제가 홍성수 교수님 정말 좋아하는데 죄송하지만, 여성혐오가 이렇게 드러날 줄 몰랐다고 하셨는데, 본인도 정말 몰랐던 겁니다.
- (말도 안 되는 기사를 볼 때) 저는 기자에게 메일을 보내거나 전화를 합니다. 우리 학생들에게도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기사가 있으면 계속 메일을 보내서, 스팸메일처럼 계속 보내서 사과를 받아내라고 해요. 그렇게 하는 거예요. 끈질기게. 나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게, 싸울수록 강해집니다. 전투를 할수록 맷집이 생기고 계속 강하게 돼요. 그러다 동지를 만나고. 같이 싸우면서 점점 더 강해집니다.
- 남자들 일반화시키지 마라, 내가 왜 가해자냐, 하는데. 제가 그랬잖아요. 정신분열증이라고. 맨날 보는 그 음란물, 만화, 그게 다 여성혐오인데 자기가 자기를 몰라요. 자기가 매일같이 의식없이 행하는 그 온갖 조롱과 시선과 말들. 그게 다 여성혐오입니다.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라 실제 가해자. 그걸 왜 모르냐.

홍성수
- 용어에 대해. 저는 법학이 아니라 법사회학 전공이라 법적 담론에 관심이 있습니다. 여러 언어가 법적 담론에 있지만, 보통 기존 남성의 담론이고 남성으로 구성되는 담론이 대부분이에요. 법의 언어가 사회의 언어로 넘어가면 원래 말하려던 것보다 희석되고 왜곡되는 게 대부분이긴 합니다. 그런데 그거 자체가 나쁜 게 아니에요. 사회에서 어떻게 이야기하는지도 의미가 있고요.
그런데 법 언어가 우위를 갖고 사회의 언어를 제압하려고 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폭력". 법에서 "폭력"은 굉장히 협소한 의미입니다. 하지만 사회에서 폭력이라고 하는 건 (법적 "폭력"이 아니라도) 그럴 만한 의미가 있죠. 여기에 대해 법적으로 폭력이 아니라고, 폭력이라고 하는 건 멍청하다고 비난하기 시작하고... 법적 담론은 대단한 위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여성혐오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여성혐오"에는) 좁은 의미로만 단정할 수 없는 광범위한 맥락이 있습니다.
- 용어가 사회적으로 정당하다면 어떻게 법과 병치시킬 것인지를 고민해야지. 너네가 틀렸다고 한다든가, 법적 언어에 밀린다든가 하면 곤란하지 않을까 합니다. "혐오"는 사실 일상용어로는 안 맞는 면이 있어요. 근데 안 맞는다고 해서 이 말을 양보하는 건 적절하지 않습니다. 마땅한 대체어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어떻게 말의 권력을 얻어나가냐는 하나의 싸움인 것이지, 논리적으로 맞고 틀리고의 문제는 아니지 않을까.

이미경
- 우선 용어에 대해서. 몰카라는 말은 범죄성을 축소하고 희화화하는 부분이 있다는 지적에 무단촬영, 강제촬영이 어떨까 하는 제안을 해주셨는데요. 적절한 용어를 만들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 '성폭력 피해자'라는 말의 이미지가 나약하고 가치 없다는 이미지라서,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생존자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이것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고, '경험자'는 어떠냐는 제안이 있었습니다. 논의 중에 있습니다.
- 말하기의 힘. 피해 생존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말한다는 것, 그게 '객관적'이라고들 하는 잘못된 가치나 개념에 얼마나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봐왔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많이 말해야 하고요. 침묵하는 것은 곧 동조이기 때문에. 이 침묵을 깨고 만들어나가는 사람이어야.
- 역사는 결코 되풀이되지 않는다고 하죠. 운동하면서 많이 변했습니다. 앞으로 십년 이십년도 우리가 바꿔나갑시다.

송란희
- 팁을 하나 공유하겠습니다. 너는 남혐하잖아, 라는 사람들에게, 니혐이라는 말을 주고 싶습니다. 이건 남혐이 아니라 니혐이거든. (박수) 제가 아껴놨던 건데 여기서 공유하겠습니다.
- 기사 읽고 댓글 달고 토론회도 나가고. 무엇이든지 하자고. 예전에 쓰던 말이, "시작했으니 두려움 없이"인데요. 우리가 시작했으니 두려움 없이, 침묵을 깼으니 끝까지, 함께합시다. 감사합니다.

최지은
- 온라인 싸움 노하우를 드리자면, 적성에 맞는 걸로 하세요. 나는 싸움이 적성에 맞는다, 싸울 때 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 그럼 글쓰기를 하시고. 아니다 나는 안 맞는다 싶으면 남이 쓴 글에 좋아요나 반대를 누르는 걸. 어쨌든 의사표현 하기를 멈추지 말아주셨으면.
- 그리고 단체에 계신 분들은 차마 이야기 못할 것 같아서, 제가 이런 자리에 나오면 하는 말인데요. 내가 후원하고 싶은 단체를 찾아서 정기후원 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김금옥
- 혐오세력에 맞먹는 큰 집단을, 우리가 함께, 우리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 손잡기 위해서. 함께해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여러분 안전하게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라키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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